인크레더블 2 (Incredibles 2)
진화하는 영웅담과 밀도 높은 현실감
브래드 버드의 ‘인크레더블 (The Incredibles, 2004)’이 무려 2004년 작, 그러니까 14년이나 전 영화였다는 걸 2편을 보고 정리하면서야 알 수 있었다. 체감상으로는 한 5년 정도 전 영화가 아닐까 싶었는데, 10년도 아니고 14년 전 영화라니. 다시 생각해봐도 묘한 기분이다. 이 간극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보자면 ‘인크레더블 2’는 전편의 마지막 장면으로부터 바로 시작하는데, 꼭 이런 직접적인 연결 포인트 때문이 아니더라도 속편과 전편의 자연스러움은 14년의 세월을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2004년 당시 ‘인크레더블’이 성취했던 기술적인 우수함을 감안하더라도 한 해 한 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는 CG 수준을 고려했을 때 반드시 이질감이 들 수 밖에는 없지 않을까 (않았을까)하고 감상을 더듬어 보았지만, 그런 부자연스러움은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다만 바이올렛이 좋아하는 남자 친구의 얼굴은 전편에 비해 많이 업그레이드되었더라).
가족이라는 소재로 히어로물을 그려냈던 ‘인크레더블’은 속편에서도 같은 시선에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미스터 인크레더블이 아닌 엘라스티걸이 히어로 슈트를 입고 활약한다는 설정은 단순한 역할 바꾸기에 그치지 않는다. 만약 단순한 역할 바꾸기였다면 인크레더블은 아이들을 돌보며 엘라스티걸이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지 깨닫게 되고, 엘라스티걸 역시 인크레더블의 히어로 활동이 녹녹지 않은 것이구나 하며 서로 역지사지하는 것에 머물러 사실상 별다른 메시지를 주지 못했을 텐데, ‘인크레더블 2’의 이야기는 이 보다는 훨씬 더 깊이 있는 드라마를 보여준다. 실제로 ‘인크레더블 2’를 보는 내내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액션이 화려하다, CG 기술 수준이 상당하다 등이 아니라 드라마의 깊이에 엄청나게 신경을 썼구나 하는 점이었다.
이번 작품에 새롭게 등장하는 악당인 스크린슬레이버 역시 히어로 장르 안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는 악당이기는 하지만, ‘인크레더블 2’는 이 악당을 거의 서브플롯으로 활용한다. 적어도 메시지를 기준으로 보자면 그렇다. ‘인크레더블 2’의 주된 이야기는 미스터 인크레더블의 성장과 엘라스티걸의 확장에 있다. 먼저 엘라스티걸의 활약상의 경우 미스터 인크레더블의 성장 스토리를 위해 전면에 나서게 된 감이 없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렇게 소모되는 것에 만족하지는 않는다. 결정적인 순간엔 결국 남편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난다거나 하는 구시대적 클리셰는 존재하지 않으며, 엘라스티걸로 활동하는 내내 가족의 안위 (직접적으로는 집구석이 본인 없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를 걱정하기는 하지만 전면에 나선 만큼 히어로로서 활동하는 데에 있어 전문성을 잃지 않는다. 이건 극 중 엘라스티걸의 면면뿐만 아니라 영화가 엘라스티걸을 묘사하는 방식 역시 그렇다.
그리고 타의로 인해 히어로 활동 대신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역할을 맡게 된 미스터 인크레더블은 (당연히) 그 과정을 통해 진정한 의미의 히어로로 성장한다. 자신보다 엘라스티걸을 먼저 원했기 때문이라는 전제로 인해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다는 단점이 없지 않지만, 아이들을 돌보는 과정 중에 깨닫게 되는 모습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저 역지사지로 끝나지 않는 장점이 된다. 그런데 하나 재밌는 건 순전히 개인적인 경험에 따른 것일 수도 있지만, 처음 인크레더블이 히어로 역할을 맡지 않고 육아를 맡게 되었을 때 직감적으로 앞으로 닥쳐올 고통과 피로를 예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즉, 위험할 수도 있는 히어로 활동을 위해 집을 떠나는 엘라스티걸이 부럽고 행복해 보였달까. 그건 육아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아버린 자의 뼈저린 공감대였다.
마지막으로 ‘인크레더블 2’ 상영 전에 본 단편 ‘바오 (bao)’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어쩌면 ‘인크레더블 2’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준 작품으로, 짧은 러닝 타임에 부모의 마음이라는 헤아릴 수 없는 감정을 완벽하게 집약시킨 스토리와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아내랑 그런 이야기를 나눴다. 과연 우리가 부모가 아니었다면 이 작품을 지금처럼 공감할 수 있었을까. 그저 엄마가 많이 서운하겠다 정도가 아닐까?라고. 아마 그랬을 거다. 부모의 감정이라는 건 간접 경험으로는 도달하기 어려운 감정이라는 걸 아이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 매일매일 느끼고 있는데, 이 작품 ‘바오’는 그런 감정을 정말로 잘 집약해 낸 이야기였다. 개인적으로는 ‘업’의 인트로를 보았을 때처럼 본편이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눈물을 펑펑 흘리고 시작한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