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感想)

홈랜드 (Homeland)

홈랜드 (Homeland)
긴 호흡의 현실 정치첩보 드라마

‘홈랜드 (Homeland)’가 이렇게 오래 방영될 줄 누가 알았을까? 나 역시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약 10년의 긴 시간을 한 드라마와 함께 보내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평소 첩보물, 이른바 요원 물을 특히 좋아하는 편이다. 액션 중심의 요원 물도 재미있지만, 정보원과 스파이가 중심이 된 요원 물도 그 만의 디테일한 재미가 있는데 이 장르는 우리가 쉽게 접하기 힘든 문 뒤의 세계를 그려내지만 바로 그 문 밖의 세계(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세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흥미롭고 더 매력적이다. CIA, FBI 등이 등장하는 첩보 스릴러 장르의 경우 워낙 영화와 드라마로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기도 하고, 특히 드라마의 경우 더 이상 새로운 첩보물이 더 나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다양하고 세분화된 작품들이 한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그 가운데서도 ‘홈랜드’처럼 장수한 작품이 있었나 싶다. 

이 드라마가 이렇게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장르적 재미와 현실 정치, 현실 세계정세를 디테일하게 살려냈기 때문일 거다. 특히 오랜 시간 방영하면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미국 중심의 세계정세를 반영할 수 있는 기회들도 있었고, 그렇게 반영된 에피소드들은 드라마 이상의 현실 담론을 끌어내기도 했다. 드라마가 갖고 있는 주장 혹은 입장에 동의하느냐 여부를 떠나서, 이 드라마가 표현해 내는 객관적 사실들과 다양한 관계들의 묘사는, 1편으로 끝나는 영화나 1~2 시즌으로 마무리되는 드라마들에서는 할 수 없는, 길게 보고 충분히 전후 맥락을 각자 따져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미국이 중동에서 벌이는 수많은 크고 작은 작전들, 이를 둘러싼 미국 내 복잡한 이해관계 및 정치 세력 다툼들과, 이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중동 국가들의 더 복잡한 이해관계들과 그들 만의 오래된 갈등 들은 얼핏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접했던 이야기들이긴 했지만, ‘홈랜드’가 가진 디테일과 시간의 힘은 좀 더 깊이 있는 감상과 고민을 하게 했다.

그 ‘홈랜드’가 시즌 8을 마지막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사실 초기 시즌들은 임팩트나 전개 측면에서 훨씬 더 빠르고 강렬한 것에 비해 중반 시즌들은 좀 더 지루한 갈등과 복잡하게 얽히는 관계들 때문에 조금 집중력이 흐트러지기도 했었는데, 시즌 7부터 피날레인 시즌 8은 마지막이라는 걸 감안하지 않더라도 다시 한번 손에 땀을 쥐는, 그리고 몇 번이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내용들로 전개됐다. 그렇게 넷플릭스를 통해, 마치 처음 이 드라마를 즐겼을 때처럼 마지막 시즌을 단숨에 즐길 수 있었는데, 그동안의 세월(시간)이 녹아든 탓인지 마지막 시즌은 좀 더 감정적으로 느껴졌다. 그동안 캐리 (클레어 데인즈)는 주인공임에도 크게 사랑받지 못하는, 심지어 종종 짜증 나게 만드는 캐릭터가 되기도 했는데, 캐리가 마지막에 하게 되는 여러 선택들은 뭔가 더 안쓰럽고, 마음이 좋지 않은 순간들이 많았다. 아니 대부분이었다. 그간 캐리가 겪어온 일들과 지워지지 않는 시간들을 잘 알기에 마지막으로 향할수록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선택들은, 그를 비난하기보다는 동정하고픈 마음이 더 컸다.

그래서 나는 이 엔딩이 짜릿하다거나 통쾌하기보다는 몹시 쓸쓸하게 느껴졌다. 모든 것을 훌훌 털고 떠날 수 있는 인물들에 반해, 결국 모든 것을 잃고도 이 세계를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자의로도 타의로도 벗어날 수 없고, 본인도 벗어날 생각이 없는) 캐리와 이 세계의 인물들이 영웅적이기보다는 안쓰러웠다.


새로운 시즌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요 며칠 다시 정주행 하며 흠뻑 빠져버린 홈랜드의 세계가 끝났다는 사실이 너무 아쉽다. 캐리와 사울은 마치 매일 만날 수 있는 (만냐 야만 하는) 아주 가까운 사람들처럼 느껴지는데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다니, 10년 가까이 함께 한 시간이 무섭긴 무섭다. 또 다른 긴 호흡의 드라마를 찾아 먼 길을 다시 떠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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