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感想)

[넷플릭스] 치욕의 대지 _ 섣부른 면죄부 없이 그려낸 역사

[넷플릭스] 치욕의 대지 (Mudbound, 2017)
섣부른 면죄부 없이 그려낸 역사

지난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으며 주목받았던 디 리스 감독의 영화 ‘치욕의 대지 (Mudbound, 2017)’를 넷플릭스를 통해 감상했다. 힐러리 조던의 동명소설 ‘Mudbound’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인종차별이 여전히 존재하던 미시시피를 배경으로 농장을 운영하는 한 백인 가족과 소작농 흑인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치욕의 대지’는 중반 이후까지 마치 제목처럼 그저 진흙으로 덮인 땅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듯 커다란 극적 요소 없이 인물들의 크고 작은 내적 갈등을 묘사하는데 집중한다. 이런 과정이 초반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소 지루한 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한 명의 인물이 아닌 주요 인물 대부분의 시점에서 내레이션이 진행되는 방식을 통해, 각자의 이해관계와 당시의 시대 상을 아주 짧게 축약해 낸다. 

유색인종 차별과 같은 역사를 그릴 경우 창작자가 가장 민감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 즉 피해자가 존재하는 사안일 경우 가장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점은 가해자에 속한 이들(세력 혹은 인종)에게 너무 손쉽게 면죄부를 주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일 텐데, 실제로 같은 소재를 다루었던 다른 많은 작품들이 이 같은 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던 경우가 많았었다. 그런 결과를 낳았던 대부분의 이유는 바로 창작자가 피해자의 입장에 서보지 않았던 제삼자인 경우였기 때문인데, 예를 들어 유색인종 차별과 같은 경우 본인은 전혀 그런 시각을 갖지 않고 있다고 믿는 백인 창작자가 이를 묘사했을 경우에도, 유색인종으로서 겪었던 심정이나 민감할 수 있는 부분들을 완전히 다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설령 그것이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실수를 범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리고 그 실수는 대부분 유색인종을 차별했던 백인들에 대한 섣부른 면죄부로 표현되곤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치욕의 대지’에는 당시 백인에 대한 그런 섣부른 면죄부가 존재하지 않는다. 인종차별이 존재하던 시절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백인 캐릭터는 몇 가지로 나눠볼 수 있는데, 흑인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KKK집단 같은 주인공의 아버지, 그리고 흑인을 인간 이하로 생각한다거나 더러운 존재로 여기지는 않지만 지금의 차별에 대해서는 정당하다고 여기는 헨리, 마지막으로 흑인과 별다른 거리낌 없이 소통하는 제이미가 등장한다. 첫 번째 캐릭터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지만 가장 많이 실수하는 캐릭터 중 하나가 헨리 같은 캐릭터인데, 얼핏 보면 흑인들을 존중해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들도 분명 인종차별에 반대하지 않는 가해자일 뿐이다. ‘치욕의 대지’는 헨리라는 캐릭터를 아주 건조하게 묘사하는데, 그 가운데서도 관객들이 그를 그나마 나은 사람이라고 여길 수 있는 부분들에 도달했을 때 최대한 짚고 넘어가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이 같은 오해의 소지를 없애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론셀과 옆자리에 같이 타고 같이 술도 나눠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게 되는 제이미는 이런 드라마에서 가장 쉽게 면죄부를 줄 수 있는 캐릭터일 텐데 (이를 테면, 그 시절에도 흑인들의 편에서 부당함을 이야기했던 백인들이 존재했다!라는), ‘치욕의 대지’는 이 같은 오류를 아주 영리하게 빠져나간다. 바로 제이미와 론셀이 전쟁에 참여하며 외상 후 스트레스를 겪게 된다는 설정 때문인데, 그러니까 제이미는 인종차별에 반대하기 때문에 론셀과 친분을 쌓아가고 그의 편에 서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마찬가지로 전쟁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론셀에게 공감대와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쟁이라는 커다란 사건을 겪게 된 제이미를 론셀을 이해하는 유일한 캐릭터로 등장시킴으로써, 당시의 백인들에게 섣부른 면죄부를 주지 않는 것은 물론, 결국 당시 어떤 백인도 이 비 인륜적 시대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가장 인상적인 건 영화의 엔딩이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희망적이기보다는 염세적인 것에 가까울 정도로 씁쓸하고, 또한 현재에게 던지는 메시지로서 강렬하게 다가왔다. 결국 이곳에서는 행복할 수 없었던 론셀이 본래의 가족을 떠나 다른 곳에서 새로운 가족과 희망을 꿈꾸게 되는 결말은, 그래도 희망이 있다는 것과는 정반대로 이곳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것처럼 느껴진다. 엔딩이 주는 묵직한 메시지를 비롯해 이 작품 전체가 담고 있는 분위기는 지금의 트럼프 시대의 미국에 여러 가지 의미로 다가올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 제이미 역을 맡은 가렛 헤드룬드는 어디서 분명히 본 것 같은데 잘 기억이 안 나서 나중에 찾아보니, 아! ‘인사이드 르윈’에 나왔었군요 ㅎ

* 흑인이자 여성 감독, 대부분이 여성 스텝들로 만들어진 이 작품이 과연 이번 아카데미에서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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