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感想)

매그놀리아 _ 포기해. 이 끝 너머엔 또 시작이 있어

이 한 장의 사운드트랙
vol.1 매그놀리아 (Magnolia, 1999)

포기해. 이 끝 너머엔 또 시작이 있어  

내가 처음으로 돈을 받고 글을 썼던 건 영화 관련 글이 아니라 음반 관련 글이었다. 정확히 어떤 음반, 앨범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앨범과 뮤지션에 관련한 글을 먼저 쓸 수 있는 기회들이 있었고 이후 음악 영화, 음반 DVD 등에 관해 쓰게 되다가 자연스럽게 영화 관련 글쓰기로 넘어오게 되었던 것 같다. 그만큼 관심사나 관련 아이템에 투자하는 규모(?) 역시 음악에서 영화로 주도권이 넘어오게 되었다. 실제로 예전 음반 쇼핑몰에서 일할 땐 월급의 50% 이상을 음반 구매로 사용하기도 했는데, 재미있는 건 이런 게 나뿐만 아니라 같이 일하는 동료 대부분이 그랬다는 점이다. 그만큼 음악에 흠뻑 빠져있던 20대였고, 다행히 내 주변도 다들 그랬다.

이렇게 음악에서 영화로 관심사의 비중이 넘어오는 과정 중에 큰 역할을 한 건 음악 영화들과 주옥같은 사운드트랙들이었다. 좋아하는 뮤지션의 음악이 사용된 영화라던가 또는 어떤 뮤지션의 삶을 그린 음악 영화 혹은 음악이 중심이 된 뮤지컬 영화들은 아무래도 다른 극 영화들보다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었고 또 영화 매체를 더 매력적으로 흡수하게 되는 매개체가 되었다.  

평소 좋아하던 뮤지션의 이야기나 그들의 곡이 수록된 영화를 먼저 고르게 되는 것이 일종의 OST애정사 1기라면, 2기는 그런 것과는 전혀 무관한 선택이었으나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오롯이 영화 음악의 매력에 빠져 사운드트랙으로 그 영화를 더 오래 기억되는 경험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바로 그 대표적인 사운트랙이 ‘이 한 장의 사운드트랙’을 통해 가장 먼저 소개하고픈 폴 토마스 앤더슨의 ‘매그놀리아 (Magnolia, 1999)’ OST다.

‘매그놀리아’를 극장에서 본 건 아마도 2000년 개봉 당시로 기억하는데, 10년도 더 훌쩍 지났음에도 영화를 보고 나온 일산의 모 백화점 멀티플렉스 극장 앞 밤거리의 공기가 생생하게 기억날 정도로 이 영화가 내게 미친 충격과 영향을 결코 적지 않았다. 특히 영화 음악이 그랬다. 당시 영화가 끝나고 났을 땐 버스 막차가 막 끊기기 직전의 밤늦은 시간이었는데, 극장의 스피커가 찢어질 듯이 큰 소리로 쏟아지던 개구리 비를 흠뻑 맞고서 극장 밖 거리로 나왔을 때, 인적이 드물고 고요하기까지 했던 현실의 거리 풍경이 오히려 더 영화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었다.

‘매그놀리아’ 사운드트랙은 에이미 만 (Aimee Mann)의 솔로 앨범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녀의 음악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실제로 감독인 폴 토마스 앤더슨은 신작을 구상하며 에이미 만이 작업 중이던 새 앨범 ‘Bachelor No.2’의 데모를 듣고 전체적인 작품의 구성과 곡들을 연결했고, 수록곡인 ‘Wise Up’은 영화 자체의 모티브이자 플롯을 짜는 뼈대 역할을 했다. 한 편으론 당연한 얘기지만 ‘매그놀리아’ 사운드트랙은 그래서인지 해리 닐슨의 원곡을 커버한 1번 트랙 ‘One’부터 12번 트랙 ‘Magnolia’에 이르기까지 완벽한 서사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

다시 말해 ‘매그놀리아’ 사운드트랙은 좋아하는 곡을 콕 집어 반복해 듣는 것도 좋지만, 마치 영화 한 편을 감상하듯 앨범의 형태로 1번부터 12번까지 한 번에 감상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또 극적인 앨범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기존에 유명한 곡들로 꽉 채워져 언제든지 꺼내어 즐기기 좋은 OST들도 좋지만, 좀 더 사운드트랙 본연의 의미를 떠올려 본다면 이 작품 같이 영화와 음악이 같은 속도와 흐름으로 전개되고 마무리되는 앨범들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 듯하다.  


 


ⓒ New Line Cinema. All rights reserved

‘매그놀리아’ OST를 인상 깊게 들었거나 소개하는 글들을 보면 아무래도 에이미 만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나 역시 이 OST를 시작으로 그녀의 솔로 앨범들을 찾아 듣게 되었었다), 이번에는 이 앨범의 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존 브리온 (Jon Brion)의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가끔 예전에 봤던 영화들을 다시 꺼내보게 되면 당시에는 미처 몰랐으나 현재는 익숙한 배우나 스텝들이 작품에 출연하거나 참여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하고 반가워하게 되는 일들이 있는데, 내게 존 브리온과 ‘매그놀리아’가 그랬다.  

그의 이름을 처음으로 인지하게 된 건 미셸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04)’이었다. 벡이 부른 커버 곡과 (이 곡이 커버 곡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도 많은데, 이 영화에서 벡의 목소리로 전해지는 곡 ‘Everybody’s Gotta Learn Sometime’의 원곡은 The Korgis가 1980년에 발매한 앨범 ‘Dumb Waiters’의 동명 수록곡이다), ELO (Electric Light Orchestra)의 ‘Mr. Blue Sky’ (최근 이 곡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의 오프닝으로 사용되며 더 깊게 각인되기도 했다)가 강한 인상을 남긴 ‘이터널 선샤인’ 사운드트랙은 이 수록곡들이 인상적이기도 했지만 그 외에 스코어들이 더 깊은 여운을 주는 또 하나의 마스터피스 OST였다. 그래서 이 앨범의 프로듀서와 작곡자가 누구인지 자연스럽게 찾아보게 되었고 그 이후 존 브리온이라는 이름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내 영화 선택에 반복적으로 만나게 된 음악가였다.   

참고로 그가 음악감독을 맡거나 참여한 사운드트랙 들로는 ‘매그놀리아’이어 폴 토마스 앤더슨과 함께한 ‘펀치 드렁크 러브 (Punch-Drunk Love, 2002)’ 그리고 ‘이터널 선샤인’의 각본을 썼던 찰리 카우프만이 연출을 맡은 2008년 작 ‘시네도키, 뉴욕 (Synecdoche, New York, 2008)’ 등이 있다. 꾸준히 활동을 하고는 있지만 최근에는 인상적인 사운드트랙 작업이 많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존 브리온이라는 이름은 아직까지 사운드트랙을 선택할 때 눈여겨 찾아보게 되는 중요한 이름 중 하나다.  

기존에 해설지 등을 썼을 땐 간략하게라도 수록곡들을 한 곡 한 곡 소개하는 걸 빼놓은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매그놀리아’ OST는 대부분의 개별 곡들에 대한 소개는 호기심의 영역으로 남겨두고 ‘Wise Up’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Wise Up’은 ‘매그놀리아’ 그 자체이고 나 역시 힘겨웠던 순간마다 여러 번 꺼내 들었던 위로의 곡이었다.

영화의 후반부. 극 중 인물들의 감정과 고단함이 한계에 다다랐을 즈음, 피아노 선율이 조용히 흐르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에이미 만의 목소리를 따라 인물들이 한 명 한 명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각자의 심정을 담담히 노래에 담기 시작한다.

‘Wise Up’이 흐르는 이 시퀀스는 영화 음악이 사용된 다른 영화들의 장면들과는 조금 다르다. 완전히 반주에 맞춰 뮤지컬처럼 노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저 수록곡이 배경처럼 흐르는 것도 아니다. 노래는 가수의 음성과 함께 흐르지만 인물들은 마치 어디선가 들려오는 이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는 듯이 가수의 목소리와 겹쳐서 각자의 음성으로 노래를 부른다. 이런 연출은 단순히 각각 인물들의 현실이 하나로 엮여 있다는 것 이상의 유대감은 물론, 3시간이 넘는 영화의 이야기를 단 3분이 조금 넘는 시간 안에 완벽하게 압축해 낸다. 압축되어 있기에 슬픔과 아픔은 더 배가 되지만 그렇다고 과장되거나 포장됨은 없다. 이 곡을 부를 때 인물들의 현실은 대부분 스토리상으로 봤을 때 마지막 시점에 놓여있지만, 놀랍게도 자신에게 주어진 그 한 소절의 짧은 순간엔 각자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담아낸다.  

 

Wise Up – Aimee Mann

It’s not what you thought
when you first began It
You got what you want now
You can hardly stand It, though by now you know

It’s not going to stop It’s not going to stop
It’s not going to stop ’til you wise up

You’re sure there’s a cure and
You have finally found it you think one drink

처음과는 다를 거예요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당신이 원하던 걸 가졌죠
당신은 견뎌낼 수 없어요, 지금에야 알아버렸지만

멈추지 않을 거예요 멈추지 않을 거예요
멈추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 깨닫기 전엔

You’re sure there’s a cure and
You have finally found it
You think one drink will shrink you
Til you’re underground and living down

But it’s not going to stop it’s not going to stop
It’s not going to stop ’til you wise up

당신은 나아질 수 있다 믿죠
방법을 찾고야 말았죠
한잔의 술이 당신을 내몬다 생각하겠죠
저 밑바닥까지 잊어버리려

하지만 멈추진 않을 거예요 멈추진 않을 거예요
멈추진 않을 거예요 당신이 깨닫기 전엔

Prepare a list of what you need
Before you sign away and do the deed
Cause it’s not going to stop

뭐가 필요한지 목록을 만드세요
모두 다 처분해 버리기 전에
왜냐면, 결국 멈추진 않을 거예요

It’s not going to stop no, it’s not going to stop
’til you wise up no, it’s not going to stop
’til you wise up no, it’s not going to stop

So just give up

멈추진 않을 거예요, 멈추진 않을 거예요
깨닫기 전엔 멈추지 않을 거예요
깨닫기 전엔, 멈추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그냥 포기해요.  

 



ⓒ New Line Cinema. All rights reserved

 

처음 이 곡을 좋아했던 이유는 한 없이 깊은 절망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언젠간 멈출 거예요, 그때까지만 견뎌내요’가 아니라 ‘결국 멈추진 않을 거예요, 그러니 그냥 포기해요’라는 말은 무언가 절벽 같은 막다른 곳에 다다랐을 때, 한 발만 더 내디디면 낭떠러지일 것만 같은 좌절을 맞닥들였을 때, 부정과 좌절의 의미로 다가와 가슴에 꽂혔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똑같이 현실 속에서 절벽과 낭떠러지 앞에 서게 되었을 때 다시 마주하게 된 이 곡은, 다시 걸음을 뒤로 돌리게 만드는 위로를 담고 있었다.

곡의 가사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깨닫기 전엔 멈추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그냥 포기해요’라는 말은 그대로였지만, ‘그래, 그냥 포기하자’라는 감정은 좌절보다는 위안으로 점점 더 변해갔다. ‘깨닫기 전엔 멈추지 않을 거예요’라는 말이 처음엔 ‘그래, 그러니까 깨달아야만 해’라는 또 다른 압박이 되었다면, 시간이 흐른 뒤엔 ‘그래, 어차피 깨닫지 못해’의 자조적인 감정도 느끼게 했다가 나중엔 ‘그래, 깨닫지 못해도 돼. 포기해도 상관없어. 좀 내려놓자’라는 식으로 스스로를 내려놓는 위로의 메시지가 되었다. 누군가에겐 나와는 다른 거꾸로의 역사가 진행되었을 런지도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이 곡엔 위로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포기 (Give Up)라는 단어에 좌절이 아니라 희망이 담겨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 이 곡은 위로가 되기 시작했다. 삶을 겪다 보면 한 번쯤, 아니 여러번 거대한 나선 위에 놓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직장인이라면 회사 생활이 될 수도 있겠고, 남녀 관계가 될 수도 있으며, 가족이나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일종의 나선이 형성되어 반복 운동을 하듯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즉,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음에도 이 익숙해서 안전하게 느껴지는 나선 위에서 벗어나게 되었을 때의 두려움과 공포 때문에 덜 불안한 현상 유지를 택하게 되는 일이 아주 많다.  

나선 밖의 세상은 미지의 세계다. 미지여서 궁금하기보다는 두려움이 더 큰 세계. 그래서 삶이 더 견고하게 지속될수록 한 발 더 디뎌 나선 밖으로 나서기가 정말로 힘겨워진다. 가끔은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질 정도로. 한창 그런 고민에 빠져 있을 때 ‘Wise Up’이라는 곡의 ‘포기해요’라는 가삿말은 일종의 도발 혹은 유혹처럼 느껴졌었다. ‘그래, 그냥 포기해. 이 고통은 절대 끝나지 않을 거야. 포기해도 돼’ 라며 ‘겨우 그것밖에 안되지?’라는 조롱처럼 느껴졌었다. 하지만 더 이상 이 나선 위에서 회전하고 있는 내가 무의미하다고 느껴질 때쯤 다시 듣게 된 ‘포기해요’라는 가삿말은, 조롱이 아닌 ‘괜찮아’라는 위로로 다가왔다.

포기해도 괜찮아. 끝이 아니야. 이 끝 너머엔 또 시작이 있어. 끝이 아니야’라고. 확실히 그 낭떠러지 같던 결정의 순간들에서 용기를 내 한 발 더 디딜 수 있도록 하는데 이 곡의 위로는 큰 힘이 되었다.  

그렇게 조금은 더 현명해진 걸까? 그건 아직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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