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感想)

믿을 수 없는 이야기 _ 과오를 깨닫게 되는 완벽한 현재의 드라마

믿을 수 없는 이야기 (Unbelievable, 2019)
과오를 깨닫게 되는 완벽한 현재의 드라마


우연한 타이밍이었다. 평소 좋아하던 드라마의 새로운 시즌을 마치고 평소 이용하지 않던 플랫폼에만 올라온 신작 드라마를 만족스럽게 감상 한 뒤 새로운 시리즈를 찾던 중이었다. 유명하지만 그동안 손이 가지 않던 시리즈를 새롭게 시작해 볼지, 아니면 별로 언급이 되지 않았던 새로운 시리즈에 과감하게 도전해 볼지 고민 중인 터였다. 넷플릭스의 ‘믿을 수 없는 이야기 (Unbelievable, 2019)’도 그 고려 대상으로 스쳐갔던 작품 중 하나였다. 일찍이 관심이 가는 작품이기는 했으나 오히려 예고편 등을 보고 나니 그저 뻔한 이야기일 것만 같았다. 성폭행을 당한 소녀의 이야기가 자작극으로 드러났으나 결국엔 그렇지 않을 거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의 이야기가 크게 기대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시리즈를 결국 고르지 못했고 결국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선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단숨에 감상해 버렸다. 이 드라마를 보게 된 것은 올해 내가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그동안 수 없이 많은 범죄 드라마를 보았지만 대부분은 남성 형사 콤비가 주인공이거나 간혹 남성과 여성 형사가 콤비로 등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전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남성 형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들은 질의 차이는 있지만 변하지 않는 어떤 구성이나 성격 등이 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보기 전까지는 그런 성격이 존재하는지 조차 잘 알지 못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런 범죄 드라마는 당연히(?) 남성 중심으로 흘러왔기 때문에 어떤 캐릭터의 특이점이나 전개의 특성을 발견할 때도 이것이 남성 있어서라기 보다는 형사라는 직업군의 특성처럼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성 형사 콤비가 극을 이끌어 가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보고 나니 형사가 주인공인 범죄 드라마라면 디폴트 값으로 존재하던 것들이 당연시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건 남성 중심의 범죄 드라마만 볼 때는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점들인데, 여성 중심의 이야기를 보고 나니 그 차이점이 확연히 드러났다. 그중 많은 부분은 이전까지 거친 세계에 사는 형사라는 특이점에서 오는 성격이나 표현이라고 알고 있던 것들이, 사실은 남성 형사이기 때문에 존재했던 점이었다. 남성 형사가 주인공인 경우 성격의 좋고 나쁨, 정의로움의 정도와는 상관없이 피해자나 범죄자를 대할 때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혐오나 비하 등의 지점이 있었는데,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의 두 여성 형사에게서는 그런 점들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건 미세한 부분 일 수도 있는데 전체를 보고 나면 그런 익숙한 불쾌함 없이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반대로 말하자면 그런 불쾌함을 자연스럽게 수용하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럼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성폭행 사건을 다루고 있음에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표현들만 써서 그려내는 이야기인가 하면 (물론) 절대 그렇지 않다. 사건은 보통의 범죄 드라마들처럼 입 밖으로 꺼내는 것조차 끔찍하고, 그 과정의 일들도 여전히 고통스럽다. 하지만 굳이 실화라는 점을 감안해서가 아니더라도 작품이 사건과 피해자를 대하는 태도는 여러 곳에서 수준 차이를 드러낸다. 물론 피해자가 존재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피해자 (실제 인물 or 캐릭터 모두)에게 추가적인 피해를 안길 수 있다는 점에서 고민이 따르긴 하지만, 이 작품은 바로 그런 고민을 진지하게 거듭하고 거듭한 끝에 내놓은 결과물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피해자가 겪는 사건의 순간은 절대 오락적으로 묘사되거나 장시간 노출되지 않으며, 사진으로 등장하는 사건의 현장 조차 최대한 직접적인 순간을 피하고 있다. 그렇게 해도 이야기 전개나 극적 효과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진지한 태도를 가지고 접근한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구성 측면에서도 깊은 인상을 준다. 하나의 커다란 사건을 두고 두 개의 트랙으로 이야기가 각각 진행되는데, 그 두 가지를 무리하게 엮으려 하지 않고도 완벽한 하나의 메시지를 전하는 건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특히 마지막 에피소드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 작품이 내내 이야기해왔던 ‘믿음(신뢰)’에 관한 답을 들려줄 땐 울컥할 정도로 전율이 일었다. 

마지막으로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주연을 맡은 메릿 웨버와 토니 콜렛의 연기는 형사라는 캐릭터가 결코 남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확인시켜준다. 단순히 ‘여성도 형사를 잘 묘사할 수 있다’가 아니라 ‘여성 형사는 이렇게 다르다’라는 한 수준 높은 연기를 보여준다. 토니 콜렛은 정말 더 많은 작품에서 더 다양한 캐릭터로 등장해야만 한다. 

2019년 넷플릭스를 통해 정말 많은 좋은 작품들을 만나게 되었지만, 현재로서는 그럼에도 한 작품만 추천하라면 아마도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꼽지 않을까 싶다. 작품적으로도 완벽하고 다른 사람에게 추천해 더 많은 이들이 봤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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