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感想)

체르노빌 _ 대가를 치를 것

체르노빌 (Chernobyl, 2019)
대가를 치를 것

 

HBO가 제작한 드라마 ‘체르노빌’은 누구나 알고 있는 (하지만 잘 알고 있지는 못하는) 1986년 4월 26일 있었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건을 다루고 있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는 정확히는 몰라도 대략적인 내용은 알고 있는 커다란 사건들이 몇 가지 있다. 1986년 체르노빌에서 있었던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건은 그중 가장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공포가 생겨났고, 이런 두려움은 세월이 흘러 후쿠시마 원전 사고까지 이어지며 거대한 트라우마로 자리 잡았다.

드라마 ‘체르노빌’은 폭발 사건이 있기 바로 직전 상황으로부터 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수습하기 위해 벌이는 일련의 일들, 그리고 사건이 표면적으로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진행되었던 재판 과정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기본적인 플롯은 재난 영화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게 흘러가지만 중요한 건 이 사건을 바라보는 작품의 태도다. 

일단 재난을 오락으로 소비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바로 알 수 있다. 폭발로 인해 긴박한 상황, 탈출, 영웅 등의 요소는 이 작품에는 없다. 최대한 건조하고 사건의 무게를 시청자가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하되, 사건 자체의 폭발력은 결코 축소시키지 않는다. 시청자는 드라마 내내 답답함과 괴로움마저 느끼지만 편안한 탈출구는 제공하지 않는다. 보통의 재난 영화는 영웅적 주인공을 통해 이런 탈출구를 제공하지만, ‘체르노빌’의 등장하는 인물들의 영웅적 면모는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영웅적 행동을 묘사할 때조차 최대한 거리를 두려 애쓴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게 내내 온몸을 짓누르는 듯한 고통과 답답함을 주려했던 건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 때문이다. 결국 체르노빌 사건은 인간의 잘못으로 인해 일어난 사건이었으며, 그 잘못과 거짓들로 인한 대가를 치를 각오도 걱정도 없었던 이들의 안이한 행동이었다는 걸 지적하는 동시에, 그 거짓의 대가가 얼마나 커다란 것인지를 뒤돌아 보게 만든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참혹한 묘사 (시각적 묘사라기보다는 상황 묘사)들은 모두 이 질문에 대한 대답들이다. 거짓의 대가가 얼마나 참혹했는지. 영영 되돌릴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과연 누가 치러낼 것인지. 

어쩌면 ‘체르노빌’은 인간 세상에서만 가능한 이야기일 것이다. 인간 만이 거짓을 말하고 또 인간만이 양심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 인간들에게 집중한 드라마여서 오히려 사건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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