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感想)

우리집 _ 선한 마음을 가진 아이에게

우리집 (The House of Us, 2019)
선한 마음을 가진 아이에게

 

장편 데뷔작 ‘우리들 (The World of Us, 2015)’로 평단에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던 윤가은 감독의 신작 ‘우리집’은 또 한 번 아이들에게로 카메라를 가져간다. 사실 인상적이었던 ‘우리들’ 이후 윤가은 감독의 차기작은 어떤 영화일까 궁금했었는데 ‘우리집’을 보니 좀 더 감독의 색깔이 선명해졌다. 

전작 ‘우리들’이 아이들이 겪는 일들을 통해 그 안에 엄청난 갈등과 복잡한 세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그려냈다면, ‘우리집’은 어른들의 문제로 인해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놓인 또 다른 아이들의 모험을 그린다. 여기서 중요한 건 ‘어쩔 수 없이’ 문제 상황에 놓였다는 점이다. 몇 년 전 픽사의 애니메이션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인데 어른들은 비교적 쉽게 결정하는 일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들의 생각은 크게 고려하지 않은 일들로 인해 (이를테면 집을 이사 가는 일)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엄청난 스트레스 혹은 모험의 상황을 아이들이 겪게 된다는 점이다. 어른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가족 전체에게 적용되는 일들을 결정하게 되는데, 아이가 어릴수록 (부모가 아이가 어리다고 생각할수록) 아이의 의견이나 상황은 무시되곤 한다. 물론 어른들도 각자의 이유는 있다. 아이러니한 건 어른들의 이유도 대부분 ‘어쩔 수 없는’ 것들이라는 점이다.

영화 속 하나 (김나연)는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의 이혼을 막기 위해 예전 기억을 떠올리며 가족 여행을 꿈꾼다. 한 편 우연히 알게 된 유미 (김시아)와 유진 (주예림) 자매는 부모 없이 집에서 지내는 날들이 많은데, 부모가 부재중인 상황에서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나와 이사를 가야 할 상황에 놓여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커다란 어른들이 만든 사건은 결국 불행히도 한 곳에서 만나게 된다.

윤가은 감독의 작품을 이야기할 때 흔히 ‘윤가은 월드’라는 말을 자주 쓰곤 하는데 감독의 세계관 말고도 ‘세계’라는 말이 윤가은 감독 작품에 중요한 건, 영화 속 아이들이 각자 갖고 있는 세계 혹은 아이들이 놓여있는 어른들의 세계와는 또 다른 그들만의 세계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가끔 윤가은 감독의 영화를 보고 나서 ‘별 일 아닌 일을 늘어놓는다’ 라거나 ‘이야기가 없다’라는 평을 하는 이들도 있는데, 그건 철저하게 어른들 세계의 기준으로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윤가은 감독의 영화는 철저하게 영화 속 아이들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 한계성 혹은 다름을 이해한다면 ‘우리집’은 어쩌면 일생일대의 모험을 겪는 아이들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하나는 부모의 이혼으로 앞으로 더 험난한 날들을 겪어야 할지 모르며, 유미와 유진은 단순히 집을 이사 가는 것 이상의 일들과 맞닥드리게 될지도 모른다 (사실 이 자매의 입장에서 보면 더 깜깜하기만 하다. 부모는 곁에 없고 앞으로의 일은 전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이 영화를 보통의 작법으로, 일반적인 어른들의 시선으로 그렸다면 커다란 이야기에 잠깐 등장하거나 스치는 한 줄 정도의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본 이 사건은 현재 그들이 처한 가장 복잡하고 커다란 사건이며 동시에 스스로 해결하기는 너무 벅차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답답한 현실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주인공인 이야기다 보니 쉽게 동심으로 이해할 수 있는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이 공존하는데, 나는 이걸 동심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선한 마음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하나가 선한 마음을 가진 아이라는 것. 그것을 영화가 강조하는 건 그저 캐릭터 설명을 위한 장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선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고 버텨낼 수 있었던 이야기라는 걸 말하고 있다. 

동심은 아이라면 누구나 한 때 갖고 있는 것이지만 선한 마음은 아이여서 무조건 갖고 있거나 어른이어서 가질 수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면으로 봤을 때 ‘우리집’은 선한 마음을 갖고 있는 하나의 현재와 미래를 응원하고픈 영화가 아닐까 싶다. 선한 마음을 가진 이가 어른(타인)들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겪는 상처들을 지켜볼 수 밖에는 없는 게 안타까워 그 선한 마음이 더 다치지 않게 응원해주고픈 마음. 그런 또 하나의 커다란 따듯함이 드리워져 있기에 ‘우리집’은 현실을 직시하고 있지만 씁쓸하지 만은 않았다. 

힘들지만 하나씩 해쳐나갈 든든한 힘을 얻었길 바라는 마음에 차린 한 끼 식사 같은 영화였다.

 

* 가끔씩 전에 보았던 영화 속 캐릭터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질 때가 있는데, 윤가은 월드에서는 그런 궁금증을 자연스럽게 해소할 수 있었다. 같은 타임라인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한 ‘우리들’의 아이들은 잘 지내는 것 같아 보여 마음이 놓였다.

Tagged , , , , , ,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