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보이 (Hellboy, 2019)
아쉽다 나의 헬보이
내가 근래 10년 동안 가장 많이 얘기했고 원했던 영화 중 하나가 바로 길예르모 델 토로의 ‘헬보이’ 3편 제작이었다. 그 이유를 짧게 정리하자면 길예르모 델 토로의 ‘헬보이’ 시리즈는 애초부터 3부작을 계획했건 아니건 간에, 2편의 영화가 나온 시점에서 보았을 때 3편으로서 완성이 되는 이야기의 구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1편과 2편에도 시련은 있었으나 이들 모두를 포괄할 만한 이야기가 3편에 드디어 나올 예정이었기 때문에, 단순히 델 토로와 론 펄먼의 헬보이를 계속 보고 싶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1,2편을 보며 계속 기다렸던 3편이었기 때문에 꼭 나와야만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잘 알다시피 계속 시간이 흐르며 타이밍은 맞지 않았고, 결국 델 토로와 론 펄먼이 모두 하차하고 닐 마샬과 ‘기묘한 이야기’의 그 아저씨인 데이비드 하버가 참여한 새로운 ‘헬보이’를 맞게 되었다.
닐 마샬의 ‘헬보이’는 이런 전작 팬들의 기대와 우려를 감안한 듯도 하다. 이번 ‘헬보이’를 보면 헬보이가 아눙 운 라마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전혀 모르는 반응을 보이는데, 사실 이 때는 속으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왜냐하면 아눙 운 라마가 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결국 그 운명을 맞게 될 것으로 예상되었던 3편을 기다리고 있던 터였기에, 이야기가 정말로 다시 처음부터 시작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후로는 훨씬 빠른 전개 속도를 보이며 내용 만으로 보았을 때는 델 토로의 3편이 그리고자 했던 것을 일정 부분 소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이야기를 오래 기다려왔기 때문에 다시 처음부터 소개하고 시작하는 것이 다소 맥 빠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보다는 이 중요한 모티브를 이렇게 처음부터 소비하고 마는 것에 아쉬움이 더 컸다. 물론 이 모티브는 계속 살아있다고 볼 수 있지만 이전 델 토로의 영화가 이를 긴 호흡으로 가져갔던 것에 비하면 너무 빨리 소비되는 편이었다.
닐 마샬은 새로운 ‘헬보이’를 맞아 고어함을 잔뜩 증폭시켰는데, 델 토로의 기괴함이 덜어진 대신에 고어함을 선택한 것은 다른 색깔을 표방하는 측면에서 나쁘지 않았으나 확실히 과한 느낌이 있었다.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나중에 이런 고어한 장면들이 반복될 때면 ‘굳이 또 저기서 사지를 절단할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너무 사지절단에 강박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닐 마샬의 ‘헬보이’ 역시 시리즈 형태로 갈 것임을 분명하게 하고 있는데 (쿠키 영상을 굳이 논하지 않더라도), 이들 셋의 매력이 아직까지는 기대보다는 헐겁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다.
물론 닐 마샬의 ‘헬보이’는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길예르모 델 토로의 ‘헬보이’의 엄청난 팬심을 이겨내야만 하는 것이었기에 어지간해서는 만족을 주기 어려웠다는 걸 부정할 순 없겠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헬보이라는 매력적인 재료를 훨씬 단순화시킨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다. 뭐 그래도 속편이 나오면 또 보겠지만. 간혹 좋은 시리즈는 속편에서 전편의 아쉬움을 상쇄시킬 만한 감동을 주기도 한다. 닐 마샬의 ‘헬보이’도 그렇게 되었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