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感想)

미래의 미라이 _ 부모가 되어보기 전엔 알 수 없는 것

미래의 미라이 (Mirai, 未来の ミライ, 2018)
부모가 되어보기 전엔 알 수 없는 것

호소다 마모루의 신작 ‘미래의 미라이 (Mirai, 未来の ミライ, 2018)’가 처음 알려졌을 때의 감흥은 그리 크지 않았었다. 특히 전작들의 예고편을 처음 접했을 때와 비교한다면 더욱 그랬었다. 그리곤 나도 모르게 또 한 번 예고편과 시놉시스 만으로 영화를 어림잡는 과오를 범하고 말았다. 미래에서 온 미래(미라이). 그러니까 주인공의 어린 여동생이 누나뻘 나이가 되어 만나게 되는, 더 정확히 오해한 바를 이야기하자면 내 오빠를 어린아이로 만나 돌봐가며 모험을 떠나야 하는 소녀 미라이의 이야기가 아닐까 라고 생각했었다. 제목도 ‘미래의 미라이’였으니까. 하지만 막상 본 영화는 이와는 전혀 다른 포커스로 전개되는 이야기였다. 제목은 미라이 지만 사실상의 주인공은 이제 막 태어난 미라이를 동생으로 둔 쿤이었다. 

호소다 마모루의 전작이자 인생 영화인 ‘늑대아이’를 보고 나서 ‘와, 내가 아이가 없어도 이 정도로 감동적인데 만약 아이가 있었더라면 이 이야기가 얼마나 절실하게 다가왔을까’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스스로 공감 능력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라고 (그것이 장점이든 단점이든 간에) 자부하는데, 그런 나조차도 간접경험이 아닌 좀 더 직접 경험에 가까운 이야기를 영화로 만나게 되었을 때는 어떤 감동의 지경이 될지 기대 혹은 경계하기도 했다. 실제로 ‘늑대아이’를 나중에 아기가 태어나고 나서 다시 보게 되었을 땐 경계했던 것만큼 처음 보았을 때는 그저 어땠을까 상상만 했던 감정을 완전히 공감하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이번 ‘미래의 미라이’는 정말 ‘와, 이건 정말 우리 보라고 만든 영화구나’ 싶을 정도로 너무 많은 직접 경험들이 영화 속에 그대로 녹아있었다.


세상에는 해보지 않고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일들이 있고, 그럴 수 있다면 그건 행운이라고 생각하는데 적어도 현재까지 직접 경험해 본 바로는 ‘육아’는 직접 경험이 아니면 결코 간접 경험으로는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경지인 것 같다. 아니 그렇다. ‘미래의 미라이’는 아마 많은 엄마들이 공감하고 웃고, 울고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육아에 대한 많은 디테일들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건 정말로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 그러니까 만약 자료 조사만으로 이런 디테일을 완성해 냈다면 그거야 말로 대단한 경지라고 해야 할 정도로, 아는 사람에겐 뼈 속 깊이 공감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내 경우 이 이야기와 유일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둘째가 없다는 것 정도일 텐데, 이 영화에선 둘째가 태어나면서 겪게 되는 쿤의 심경 변화가 아주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다른 육아에 대한 전반적인 디테일들은 이 이야기에 심하게 동요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나의 경우는 특히 더 그랬다. 실제로 아기를 낳고 한 동안 아내가 회사에 복귀해 출근을 해야 했고 마침(?) 회사를 관뒀던 나는 그 시간 동안 온전히 육아를 담당하게 되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극 중 육아를 담당해야 했던 남편의 일들에 더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매번 아내와 얘기하고 또 되새기는 것처럼, 이런 시간을 남들보다 훨씬 많이 함께 하고 지켜볼 수 있는 것에 또 한 번 감사했다. 그리고 그런 삶을 선택한 것이 옳았다는 걸 또 한 번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엄청난 육아 디테일을 담은 ‘미래의 미라이’는 겉으로는 더 큰 가족 즉, 나의 존재가 어떻게 있을 수 있었는가를 가족이라는 커다란 울타리로 이해하는 거대한 이야기를 판타지로 녹여내고 있지만, 사실은 아주 작은 감정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아주 작은 미안함 혹은 경이로움에서.

나도 가끔 느끼는 거지만 아이의 얼굴과 표정을 한 동안 보고 있노라면 과연 그 작은 얼굴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몹시 궁금해질 때가 많다. 사진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사진에 포착된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고 또 궁금해진다. 이 영화는 마치 그런 호기심을 영화적 판타지에 빗대어 풀어낸 이야기에 가깝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혹시 어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과 이야기하고 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존재는 혹시 미래의 동생, 과거 속 할아버지, 매일 함께 지내는 강아지가 아닐까? 하는 (우리 집도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지내고 있기에 영화 속 이 설정도 심하게 공감하지 않을 수가 ㅠㅠ). 그런 아이에 대한 호기심과 경이로움을 영화적 판타지로 상상해 본 ‘미래의 미라이’는 그 상상을 다시 가족 안으로 끌어들이며 곁에 있는 가족 구성원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그리고 또 하나 느꼈던 건, 미안함이다. 육아를 하다 보면 아이에게 아무리 잘해준다고 해도 부모로서 미안한 마음이 수시로 드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실제론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너무 힘든 육아에 그 작은 아이와 다투고 힘 겨루고 지치고 하기 때문에 이 같은 미안함이 수시로 들 정도로, 나에 대해 자책하고 또 자책하기 일쑤다. 아이가 과거와 미래의 존재를 만나 부모의 부족한 부분들을 해결하고 시간을 보내고, 또 스스로 깨우치기까지 하는 이 이야기는, 반대로 그렇게 해주지 못하고 더 놀아주지 못하고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한 부모의 미안함과 자책감이 깊이 느껴졌다.

그런 자책감으로 인해 그 빈 공간을 아이가 이렇게 판타지의 세계 속에서 보낼 수 있었다면, 보낸 거라면 하는 스스로에 대한 위로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영화가 엄마의 어린 시절을 묘사하는 방식은 더 울컥해지는 순간이었다. 누구나 부모는 처음이라는, 부모이기 이전에 그저 한 사람이자 또 다른 부모의 자녀일 뿐이라는 위로를 스윽하고 꺼내 드는 장면이라, 역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 생명의 부모가 되어 정신없이 보내고 있는 우리를 돌아보게 만들어 울컥하는 장면이었다. 누구나 그랬을 것이다. 

영화라는 매체가 직접 경험을 한 대상자만을 위한 것이 되거나 더 공감되는 요소를 가득 담고 있는 건 대중 예술로서 오히려 단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직접 경험을 해 본 관객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부모가 되어보기 전엔 알 수 없는 것들. 이 한 마디로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과 감정들을 소중히 다뤄내고 있는 ‘미래의 미라이’는 어쩔 수 없이 내겐 올해의 영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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