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스 (Glass, 2019)
이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나는 것이 맞다
M. 나이트 샤말란의 ‘언브레이커블 (Unbreakable, 2000)’은 히어로와 그 기반이 되는 코믹스에 관한 아주 흥미로운 영화였다. 기존 히어로 영화로부터 관객들이 기대하는 바를 하나씩 비껴나가면서 본래 감독이 하고 싶어 했던 이야기로의 깊이를 더해가는 밀도 높은 작품이었다. 아직까지도 샤말란 영화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손꼽는 영화가 바로 ‘언브레이커블’인데 공개되었을 당시에도 이미 속편을 위한 충분한 세계관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꼭 속편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컸었다 (이전 글 참고 ‘언브레이커블 – 코믹스 세계 속 선과 악의 탄생 http://realfolkblues.co.kr/1368).
요즘 와서야 ‘언브레이커블’에 이어 ’23 아이덴티티 (Split, 2016)’ 그리고 ‘글래스’까지 이어지는 큰 그림을 거론하곤 하지만 사실 M. 나이트 샤말란은 ‘언브레이커블’ 제작 당시 속편에 대한 계획은 갖고 있지 않았었다. 왜냐하면 ‘언브레이커블’은 다른 영화로 치자면 서막에 해당하는 것이고, 이런 방식일 경우 2편에서는 선과 악이 대결을 펼치고 3편에서는 최후의 악당과 대결을 펼치게 되는 구조가 될 텐데, 자신은 오로지 서막에 해당하는 그러니까 한 인물이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이야기에만 관심이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 알다시피 이 이야기는 (국내에서 ’23 아이덴티티’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스플릿’을 통해 속편으로 확장이 되었고, ‘글래스’를 통해 완결이 되었다.
처음 속편에 대한 별다른 흥미를 내비치지 않았던 샤말란이긴 하지만 두 편의 속편은 그의 본래 계획을 번복했다기보다는 좀 더 긴 호흡으로 정리했다고 볼 수 있겠다. 즉, ‘언브레이커블’과 ‘스플릿’ ‘글래스’는 3부작의 형태를 갖추고 있기는 하지만 보통의 기승전결을 갖고 있는 히어로 영화의 3부작 형태와는 다르게 샤말란이 본래 이야기했던 것과 같이 거대한 서막 만을 다루고 있는 3부작에 가깝다. 혹자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속편이 나올까 궁금해하기도 하는데, 이 삼부작은 여기서 완벽하게 마무리되었다. 이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는 것이 맞다.
‘글래스’는 이전 두 작품 보다도 더 전형적인 면을 벗어나고 그래서 조금은 헐겁고 싱거울 수 있는 영화다. 샤말란의 말처럼 보통 삼부작의 마지막 편은 그야말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기 전에 모두가 기대하는 클라이맥스가 있기 마련인데, 이 영화에도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액션의 에너지를 끝까지 끌어올리지 않는다. 오히려 일부러 힘을 빼는 것처럼도 보이는데, 그 대신 영화가 힘을 주고 있는 부분은 다른 샤말란의 영화와 마찬가지로 인물의 심리 묘사에 있다. 아니, 심리 묘사라기보다는 그냥 진심이라고 부르는 게 더 맞겠다.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고 영화적으로 장점을 많이 포기하는 것일지라도 샤말란의 영화는 이 진심을 결정적인 순간에 더 도드라지게 묘사한다. 그래서 한껏 기대하게 만든 대중들에겐 허무하거나 힘 빠진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샤말란이 영화를 대하는 태도다. ‘글래스’에서도 이런 면이 아주 잘 드러난다. 전반적으로 건조하게 흘러가는 과정 중에도 집중하고 감정적으로 동요하게 만드는 순간은 인물의 감정을 영화가 최대한 끌어내는 순간이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영화가 세상으로 이 이야기를 꺼내 드는 장면보다도, 세 명 각자에게 그들을 끝까지 믿어준 단 한 사람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더 강력하고 뭉클하게 다가왔다. 어쩌면 샤말란이 이 거대한 코믹스, 히어로 세계관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건 온전히 믿어주는 누군가에 대한 희망이 아니었을까.
1. 이 영화의 신의 한 수는 전편인 ‘언브레이커블’에서 데이빗 던의 아들과 일라이자의 어머니로 등장했던 배우를 그대로 출연시킨 것이 아닐까 싶다. 특히 조셉 던을 연기한 스펜서 트리트 클라크의 눈빛과 얼굴은 말하지 않아도 전하는 바가 컸다.
2. 안야 테일러-조이는 정말 보면 볼수록 bjork 어렸을 때랑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