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One cut of the dead, カメラを止めるな!, 2017)
영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자화상
(영화 형식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지만, 알고 감상해도 크게 달라질 것 없는 내용입니다)
영화 한 편을 만드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감독이나 작가가 타인(대중)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영화도 음악도 그림도 또 다른 예술 작품들도 무엇이 되었든 작가의 의도가 담기기 마련인데, 그중 가장 위험하면서도 쉬운 선택 중 하나는 바로 자신이 속해 있는 예술 자체의 작업과정을 빌려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음악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노래,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 대한 영화가 그러한데, 이런 방식이 위험한 이유는 나르시시즘으로 빠지기 쉽고 또한 같은 이유로 대중들에게는 별다른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가끔 보면 꼭 영화에 관한 영화를 보면 감독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진 알겠으나 메시지가 허공으로만 떠돌 뿐 전혀 공감을 못 일으키는 영화들이 있다. 그건 아주 미묘한 차이 이기는 하지만 스스로의 일에 대한 자부심 혹은 진심은 조금만 삐끗하면 창작자 스스로만 만족할 뿐 오히려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쉽기 때문이다.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의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One cut of the dead, カメラを止めるな!, 2017)’는 바로 그 위험한, 영화에 관한 영화다. 더 직접적으로는 영화를 만드는 일에 관한 영화다. 이미 영화 만드는 과정에 대한 실제 모습과 현실은 더 이상 궁금하거나 새로울 것이 없는 이야기라 할 수 있을 텐데,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이렇듯 관객들은 모르는 스크린 밖 그들의 뒷 이야기를 보여주는 단순한 구조는 아니다. 그렇다고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처럼 레이어의 레이어를 이해해야 하는 복잡한 구조도 아니다. 그저 영화와 영화 만드는 일, 두 가지 세계가 같은 방식으로 겹쳐지는 구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앞서 말한 위험함을 완전히 극복해내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로 하여금 내가 왜 영화를 사랑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새삼 느끼게 해주는 의외의 감동적인 작품이다.
영화 속 영화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이런 단순한 재배치를 통해 영화적 재미를 새롭게 만들어 낸다. 이를테면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드는 짧은 영화 속 영화 한 편을 보고 난 뒤, 이 작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의 과정을 하나씩 알게 되면서 새로운 재미의 포인트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포인트들은 놀랍게도 모두 다 소리 내어 웃음이 터져 나올 정도로 재미있는 것이 이 영화이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좀비 영화라는 설정은 아주 탁월한 선택이라 하겠다. 이질적이고 가장 가짜 같은 장르와 이야기를 가져와 결국 가장 진짜에 가까운 진심을 전하는 영화의 방식은, 글 서두에 언급한 자화상의 방식을 가장 영리하게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라고 불릴 만한 상황들이 터져 나오는 과정 속에 이 과정에 속한 한 명 한 명이 이전에는 없던 진심들이 우연적으로 담기게 되는 진짜 ‘과정’은, 꼭 영화에만 국한되지 않더라도 과정이 있는 모든 일에 투영해볼 수 있어 진한 감동을 준다. 간혹 이런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가 기반이 된 영화들이 감동마저 얻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경우들이 있는데,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의 감동은 전혀 억지스럽지 않다. 억지스럽기 쉬운 모든 재료들을 동일하게 갖고 있지만, 코믹한 과정 중에도 알게 모르게 심어 두었던 진심들이 자연스럽게 하나씩 재기능을 발휘하며 작은 감동의 순간들을 조금씩 완성해 낸다.
여러 가지 장면들이 인상 깊었지만 그 가운데 하나만 꼽자면 엔딩 크레디트의 관한 장면을 들고 싶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라는 제목이 창작자 스스로에게 던지는 메시지와 같다면 영화 속에서 엔딩 크레디트와 관련해 벌어지는 시퀀스는 마치 관객들에게 ‘엔딩 크레디트가 다 끝날 때 까지는 나가선 안 돼!’라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너무 당연하지만 이 영화는 스스로 그 목적을 달성해 낸다.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는 아무도 눈을 뗄 수 없도록 말이다.
* 예전 보았던 일본 영화 ‘웰컴 미스터 맥도널드 (Welcome Back, Mr. McDonald, ラヂオの時間, 1997)’가 연상되는 영화이기도 했어요. 두 영화가 형식이나 담아내고자 하는 메시지가 유사한데, 각각의 미묘하게 다른 장점이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 진짜 이 영화가 가장 큰 장점은 그냥 재미있다는 거예요. 사실 혼자 보면서 소리 내어 웃는 것이 자주 있는 일이 아닌데, 여러 번 그랬으니까요. 올해가 가기 전에 보게 되어 정말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