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안 랩소디 (Bohemian Rhapsody, 2018)
다시 처음. 퀸의 노래
조금 낮 뜨거운 추억이지만 나는 고등학생 시절 당시 활동하던 성당 중창단을 이끌고 연말 성탄의 밤 무대에서 무려 이 노래를 불렀던 적이 있다. 바로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 말이다. 당시 노래에 한 껏 자신이 있었던 나는 무언가 성가 외에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었고, 그렇게 선택된 곡 중 하나가 바로 보헤미안 랩소디였다. 중고생 남녀 7~8명 정도로 구성된 중창단이 소화하기에는 당연히 턱 없이 어렵고 불가능한 곡이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무려 반주까지 피아노와 기타 반주 라이브로 이 곡을 끝내 무대에 올렸는데, 당시 나는 이 곡을 성당에서 부른다는 사실 자체에 무언가 반항적이고 도전한다는 멋에 한껏 취해있었던 것 같다. 한 때 금지곡이었고 첫 가사부터 살인이 등장하는 이 곡을 성령이 가장 충만한 성탄의 밤에 중고생들의 목소리로 전한다는 그 사실 자체에 말이다. 당시 자료가 없어서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래서 천만다행이지만) 그 당시에는 망쳤다고 까지는 생각 안 했던 것 같다. 물론 지금 다시 생각해본다면 실제로 잘 불렀고 못 불렀고를 떠나 그 곡을 감히 선곡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과거의 나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지금은 감히 시도조차 못해볼 테니까.
브라이언 싱어가 연출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Bohemian Rhapsody, 2018)’는 프레디 머큐리를 중심으로 퀸의 일대기를 다룬 일종의 전기영화다. 얼마 전 개봉했던 ‘스타 이즈 본’이 그러했듯이 뮤지션, 특히 록스타의 삶을 다룬 영화들이 그리는 전형적인 이야기를 기본으로 하는데 따지고 보면 이 전형성은 영화가 만들었다기보다는 록스타의 삶을 둘러싼 구조 자체가 실제로 그렇다고 봐야겠다. 어렵게 성공하고 성공하고 난 뒤 겪는 갈등과 몰락 등은 영화가 그랬다기보다는 실제 그들의 삶의 여정이 그러했으니까.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놀란 점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퀸의 노래를 정말 좋아했고 프레디 머큐리의 노래하는 영상과 사진들을 수없이 접했었지만 프레디 머큐리의 외모에 대해서 한 번도 이상하다고, 특히 치아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 자체를 이 영화를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영화에서는 초반 프레디 머큐리의 치아 상태나 외모에 대해 여러 번 지적하는 주변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보는 내내 ‘어? 그랬었나?’ 싶을 정도였다. 아마 대부분의 팬들이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프레디 머큐리는 그 모든 것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그리고 음악이, 라이브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다른 하나는 역시 수없이 보았던 그 라이브 클립들을 다시 보는 것만으로도 이 정도로 감동할 줄은 몰랐다는 사실이다. 떼창의 전설이라 할 수 있는 그 유명한 리오에서의 공연이나 영화의 후반부를 장식하는 라이브 에이드 공연 실황이나 수도 없이 라이브 클립으로 보았던 장면들이라 영화 속에서 다시 보게 된다면 또 어떤 감동을 줄까 싶었는데, 단순히 대형 스크린을 통해 본다는 것 이상의 감동을 느꼈다. 뮤지션의 이야기를 다룬 음악 영화들이 도달해야 할 지점 중 하나는 이미 익숙한 노래들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곡을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 혹은 그 곡이 팬들에게 깊이 남게 된 감동을 다시 이끌어내야 한다는 점일 텐데, 브라이언 싱어의 ‘보헤미안 랩소디’는 단순히 ‘영화로 다시 보기’에 머물지 않는다. 사실 그 정도에 머물러도 충분히 의미 있다 여기며 감상할 작정이었는데, 결국 눈물까지 흘리게 됐다.
마지막 라이브 에이드 공연은 그저 대형 스크린으로 이 공연 실황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것 (물론 진짜는 아니지만)에 만족하며 즐기고 싶었는데, 보는 내내 울컥울컥 한 심정을 자제하기가 어려웠다. 수없이 많이 본 장면이어서 더 건조할 줄 알았건만 영화는 이 순간에 영화가 전하려는 감정을 완전히 담아 한 번에 터뜨렸다. 흥미로운 건 하지만 영화는 이 장면을 마치 수십 번 리허설을 거쳤을 법한 완성도로 실제 공연과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프레디 머큐리의 동작 하나하나는 물론 많은 팬들이 외우듯이 했을 카메라의 동선과 구도까지 완벽하게 재현해 내는데, 그럼에도 영화가 처음부터 조금씩 키워온 감정을 가장 재현의 비율이 높은 이 공연 장면에서 최대치로 이끌어 냈다는 점은 이 영화가 성공한 퀸의 영화라는 걸 증명한다.
집에 와서 아주 자연스럽게 예전에 샀던 라이브 에이드 실황 DVD를 비롯해 퀸의 노래들을 한참이나 꺼내 들었다. 프레디 머큐리처럼 고양이들 곁에서 말이다. 아마 앞으로도 또 한참은 그렇게 되지 않을까.
- 메리 역의 루시 보인턴. 어디서 분명히 본 얼굴이다 했는데 ‘싱 스트리트’에 그녀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