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맨 (First Man, 2018)
거대하고 개인적인 우주에서
‘위플래쉬’와 ‘라라 랜드’를 연출하며 음악 영화로 자신의 이름을 전 세계 영화팬들에게 각인시킨 데미언 셔젤의 신작은 조금 의외였다. 계속 음악영화만 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과 관련한 전기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어떤 방향점의 영화를 만들 것인지 쉽게 예상하기 어려웠다. 닐 암스트롱을 주인공으로 한 전기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크게 두 가지 방향성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역사적으로 이 사건이 갖는 의미에 집중해 말 그대로 인간이 처음 달에 걸음을 내딛게 된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그 과정과 결과를 극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이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로 제한해서 인간 닐 암스트롱과 그가 겪었던 심리적 사건에 더 집중하는 방식이다. 데미언 셔졜은 ‘퍼스트 맨’을 통해 굳이 말하자면 후자의 방식에 더 가깝지만 어쩌면 이 보다 한 걸음 더 안으로 디뎌서 더 큰 우주를 발견하도록 만드는 드라마를 선택했다. 이 선택은 결론적으로 좋았다. 왜냐하면 이 영화가 선택한 재료들과 방식들은 모두 진부한 것들이었음에도 그 안에 다른 긴장과 깊이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사실 근래의 기준에서 보았을 때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한 개인의 이야기로 제한하는 방식은 오히려 더 진부하고 답답한 경향이 있다. 그런 방식이 흔하지 않을 때에는 나름의 의미를 찾기가 쉬웠지만 흔해진 이후에는 오히려 그 전사나 개인의 갈등이 제대로 드러나지 못해 구차한 것으로까지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완전히 역사적 사건을 중심에 둔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드라마가 더 완성도도 높고 흥미는 물론, 깊이까지 느껴지는 작품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데미언 셔졜의 ‘퍼스트 맨’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한 편으론 진부한 개인의 한계로 이야기를 제한한다. 그리고 닐의 심리적 갈등을 비중 있게 묘사하는 것에 대비해 달로 향하는 우주 계획의 과정은 엄청난 속도와 생략으로 진행된다. 어느 정도였나면 ‘아, 이번은 그냥 연습비행인가 보다’ 했던 비행이 실제 우주로까지 향하는 임무였을 정도로, 보통 블록버스터에서 이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으레 그랬을 과정의 긴장감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 과정 중에 일어나는 커다란 사건 (죽음)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것 역시 이 프로젝트 진행과정에서 겪는 좌절과 인내의 개념이 아니라, 닐의 심리적 갈등의 심화의 재료로만 활용된다.
데미언 셔졜과 ‘라라 랜드’를 함께 했던 촬영감독 리너스 산드그렌은 닐 암스트롱의 심리와 그 주변 사람들의 심리를 더 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극단적인 클로즈업을 활용한다. 핸드헬드 기법이 그의 심리를 묘사하는 데에 중요한 도구로 사용된 것도 맞지만, 그보다는 닐 암스트롱을 연기한 라이언 고슬링의 눈빛을 타이트하게 스크린 가득 담아내는 방식이 더 큰 효과를 만들어 낸다. 이런 방식은 드디어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달에 도착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가끔 아이맥스 화면비를 통해 달 표면 고요한 바다의 장엄한 풍광을 담아내기도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닐의 얼굴, 정확히 말하자면 눈빛을 담아내려고 애쓴다. 다시 말하자면 ‘퍼스트 맨’은 달에 인류의 첫 발걸음을 대딛게 된 사건보다는 그 발걸음이 닐 암스트롱 본인에게 어떤 안식을, 혹은 완벽하지 않더라도 어떤 맺음을 얻게 했는가의 측면에서 달과 우주, 닐을 바라본다.
따지고 보면 이 영화가 주목한 닐 암스트롱의 상처와 관련된 부분도 실제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영화적으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지점인데, 그 상처를 흔히 도달할 수 없는 달이라는 공간까지 가져갔다는 외부적 요인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심리적인 드라마로서 그 진부함을 극복해 낸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닐을 보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 영화 속에서 닐이 한 번이라도 환하게 웃은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이 영화는 내내 쓸쓸한 닐 암스트롱을 만나게 되는데, 아마도 데미언 셔졜은 이 유명한 실화와 사건 속에서 그런 쓸쓸함과 공허함을 발견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인지 묘하게도 이 영화는 영화가 끝나도 공허함이 계속 남는다. 왜냐하면 보통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닐이 느꼈던 공허함과 상처는 결코 완전히 아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 연기로만 보자면 닐의 아내 역을 맡은 클레어 포이의 연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는 달에 간 닐 암스트롱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같은 공허함을 겪었을 아내 자넷 암스트롱 역시 동등한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그녀의 연기와 캐릭터는 라이언 고슬링의 닐 만큼이나 기억에 남을 듯하다.
* 필름 촬영은 탁월한 선택이라 할 수 있겠다. 만약 이 영화가 쨍한 디지털 화질이었다면 어땠을까 싶을 정도로, 그 극단적 클로즈업과 깊이를 담아내는 데에는 필름 촬영이 더 적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