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感想)

쓰리 빌보드 _ 아무도 용서받지 못했다, 하지만

쓰리 빌보드 (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 2017)
아무도 용서받지 못했다, 하지만.

딸의 살인 사건이 범인을 잡지 못한 채 점점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지자 오래된 대형 광고판을 사서 자극적인 문구로 다시 경찰과 세상의 관심을 끌어내려는 엄마. 이 광고판을 통해 책임을 추궁당하는 경찰서장. 그리고 평소 마을과 경찰서의 골칫거리로 이런 광고를 게재한 이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또 다른 경찰. 이 세 명의 이야기는 여러 가지 각자가 처한 상황과 사회, 가치관 등을 대변하며 익숙한 대립과 해결의 방향으로 흐를 것 같았지만 마틴 맥도나 감독의 영화 ‘쓰리 빌보드 (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 2017)’는 중반 이후 전혀 다른 전개로 훨씬 더 깊이 있고 사려 깊으며 성숙한 결론을 내놓는다.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쓰리 빌보드’는 마치 계속 어긋나기만 하는 선 긋기 같다. 하나의 사건은 몇 명의 인물들에게 각각의 상황과 감정(분노)을 제공하고 인물들은 그 원인이나 책임을 갖는 상대에게로 행동하게 하지만, 그때마다 영화는 그 분노와 행동의 대상이 잘못되었다는 걸 드러내며 인물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간혹 주인공의 입장에만 서 있지 않고 적대시되는 상대의 편에도 서게 되는 영화를 보면, ‘악당에게도 사연이 있다’라는 식으로 한 편으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꺼내 들며 주인공을 다른 의미로 고통스럽게 만드는 이야기가 많은데, ‘쓰리 빌보드’는 이런 익숙한 방식과도 달리 한다. 오히려 샘 록웰이 연기한 딕슨은 물론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연기한 밀드레드 역시 씻을 수 없는 과오가 있다는 사실을 거짓 없이 드러내고, 어쩔 수 없었으므로 닦아내지 않는다. 이 점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다.

딸을 잃은 밀드레드는 덕망 있는 경찰서장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광고판으로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는 그를 궁지로 몰아넣은 탓에, 철저히 홀로 싸워야 하는 (그래서 관객이 완전히 공감대를 느끼는 주인공이 되는) 단편적인 인물로 그려지기 쉽지만, 딸이 죽던 날 그가 딸에게 퍼부은 말들이나 이후 그녀를 돕는 이를 난쟁이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차별하려 한다거나, 자신의 분노를 폭력적인 방법으로 응징하는 방식들은 온전히 밀드레드가 옳다고 말하기 어렵게 만든다. 딕슨 역시 서장의 편지를 보고 난 이후 달라진 그의 행동들은 용기 있다 말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거에 저지른 폭력적이고 인종차별적인 행동들에 대해 (그것들이 영화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가정 내에서의 억압과 멸시, 그리고 정체성에 관한 것들을 감안하더라도) 쉽게 면죄부를 주는 것 역시 섣부른 판단이라는 것을 영화는 놓치지 않는다.

© 2017 Twentieth Century Fox Film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쓰리 빌보드’가 훨씬 더 깊은 여운을 남기는 영화로 남게 된 건 절대적으로 영화가 선택한 마지막 때문이다. 마지막 순간 서로 연대하게 된 밀드레드와 딕슨은 딸을 죽인 직접적인 범인은 아니지만, 다른 누군가의 딸에게 범죄를 저질렀을 이를 응징하러 함께 차에 오른다. 그리곤 서로에게 묻는다. ‘이게 과연 잘하는 일일까?’ 그러자 딕슨이 말한다. ‘나도 잘 모르겠어’. 다시 밀드레드는 이렇게 말한다. ‘가면서 결정하자’.

영화는 여기서 멈춘다. 밀드레드와 딕슨이 그를 죽음으로 응징했을지 안 했을지는 알려주지 않은 채. 왜냐하면 영화가 말하고자 한 건 그들 행동의 결과가 아니라, 행동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영화가 결정을 유보하지 않은 채 어느 한쪽으로 결론지은 채 막을 내렸다면 한 편으로 통쾌하거나 또 가슴 아픈 이야기로 남았을 테지만 이렇게 그들의 행동 자체를 존중하는 것으로, 즉 섣불리 이런 상황에 놓인 이들의 행동을 타인의 잣대로 평가하지 않고 끝냄으로써, 영화가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작은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델마와 루이스’의 델마와 루이스가 그랬던 것처럼. ‘쓰리 빌보드’의 밀드레드와 딕슨의 얼굴도 오랜 여운으로 남게 될 것 같다.

1. 카터 버웰 (Carter Burwell)이 맡은 영화 음악도 역시 좋았어요. 그의 영화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그의 작품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을 정도. 

2. 영화가 직접 선택하기를 유보하는 건 오히려 어설픈 위로나 무책임한 방식으로 남기 쉬운데, ‘쓰리 빌보드’는 짜임새 있는 각본을 통해 결말의 선택(선택하지 않는 것을 선택)을 수긍하고 동의하게 만드는 힘 있는 영화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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