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感想)

[넷플릭스] 맨헌트: 유나바머

[넷플릭스] 맨헌트: 유나바머 (Manhunt: Unabomber, 2017)

몇 달 전 연달아 넷플릭스에서 범죄물을 보게 되면서 하나 더 볼까 하다가 한 모금 쉬어가야겠다 싶어 나중으로 미뤘던 작품이 ‘맨헌트 : 유나바머 (Manhunt: Unabomber, 2017)’였다. 바로 직전에 본 작품이 ‘마인드헌터’였기 때문에 연장선에서 바로 볼까 싶다가 아껴둔 것이었는데, 아껴둔 만큼 강렬한 작품이었다. 

범인이 누구인지 드러내 놓고 시작하는 범죄물, 특히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면 더욱 그 과정의 묘사가 작품의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작품은 그런 면에서 장르적으로 최고 수준의 몰입도와 여운을 남기는 메시지, 그리고 그 안에 존재했던 인물들의 매력까지 모두 담아낸 수작이다. 장르적으로 훌륭한 범죄 스릴러 가운데 후자들의 미덕을 미처 갖지 못한 작품들이 많은데, ‘맨헌트 : 유나바머’는 그런 면에서 흔치 않은 작품이다. ‘마인드헌터’를 보고 나서 ‘와! 이건 정말 완벽한 취향이야!’라고 외쳤었는데, ‘유나바머’가 아주 조금 더 취향이랄까. 사실 비교는 무의미할 정도지만.

그런 결론을 낸 이유는 이 작품이 갖고 있는 감정적인 부분 때문이다. ‘마인드헌터’ 역시 인물에 대해 감정적으로 다가간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그럴 수 있는 부분을 최대한 배제시킴으로써 매력적인 냉정함과 현실성을 얻었다면, ‘유나바머’는 샘 워싱턴이 연기한 프로파일러 제임스 피츠제랄드와 폴 베타니가 연기한 유나바머 각자의 이야기를 통해 세기의 범죄자라는 자극적 타이틀에 가려진 짚고 넘어가야 할 메시지들을 자연스럽게 끌어올린다. 최근 범죄 스릴러들을 보면 사회성이 부족한 대신 천재적인 주인공과 역시 천재적이지만 사회가 만들어낸 어두운 산물인 범죄자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이 많아 이런 구도조차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편인데, 비슷한 구성의 작품들에서 놓치고 있는 점들을 ‘유나바머’는 세심하게 다루고 있다.

주인공은 사건에 매달리는 동안 가족과도 동료들과도 어울리지 못하고 외톨이가 되지만, 그것이 사회성 부족이나 이른바 사건에 미쳐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표현이 부족했을 뿐 가족들을 위해 간절하게 범인을 잡고 싶어 했던 피츠제랄드의 갈등이 담겨 있으며, 유나바머 역시 사회와 가정의 피해자로서 탄생한 측면이 있고 그가 주장하는 선언문의 내용 역시 당시는 물론 현재에도 곱씹어 볼만한 화두를 담고 있기는 하지만, 그가 세상에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선택했던 폭탄 테러로 인해 목숨을 잃거나 가족을 잃어야 했던 무고한 이들의 존재도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 어느 한쪽으로 쉽게 쏠려 선악을 판단할 수 있는 단계에서 작품은 꼭 한 번씩 제동을 건다. 그러고는 다시 질문을 던진다. 유나바머의 사건을 통해 잊지 말아야 할 것과 고민해 봐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 샘 워싱턴과 폴 베타니 모두 맡은 역할이 일종의 스테레오 타입이 존재하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럼에도 그 좁은 틈을 비집고 새로운 해석을 만들어 낸 멋진 연기였다. 다른 FBI 요원 캐릭터들의 연기도 맘에 들었고.

* 워낙 몰입도가 대단해서 오랜만에 멈출 수가 없었다. (아쉽게도) 하루 만에 다 봐버렸음.

* 앞으로 신호등 빨간불에 멈춰 설 때마다 이 작품이 떠오를 것만 같다.

* 검색하다가 카진스키가 쓴 ‘산업사회와 그 미래’ 선언문을 찾을 수 있었는데, 언제 한 번 읽어봐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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