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感想)

메이드 인 어비스 _ 심연을 거슬러

메이드 인 어비스 (Made in Abyss, 2017) 
심연을 거슬러

새롭게 방영하는 애니메이션을 거의 모두 다 챙겨보다시피 하던 예전과는 달리, 요새는 시간 부족이라는 핑계로 이런저런 판단하에 선택된 소수의 애니메이션만 겨우겨우 감상해 오고 있다. 여러 작품을 볼 만한 시간이 없는 것도 그렇지만 워낙 많은 수의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터라 어떤 작품을 골라야 할지 신중에 신중을 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주변에서 이번 분기 최고의 작품이라는 말에 일단 보기 시작했던 ‘메이드 인 어비스’는 내게도 이번 분기 최고의 작품이 되었다. 

아이들이 (특히 어린아이들) 주인공인 이야기는 별로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아주 단순하게 공감대 형성이 어른이 주인공일 때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메이드 인 어비스’도 만약 대표 이미지 몇 장만 보았었다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작품이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세계관과 메시지 모두 깊은 곳에 어두움을 담고 있는 매력적이고 몰입도 높은 작품이었다.

보는 내내 게임 생각이 났을 정도로 롤플레잉 게임을 즐기는 이들이라면 유사한 점을 여럿 발견할 수 있는 익숙한 세계관과 이미지인데, 작화의 수준이나 서사를 풀어내는 기술 모두 수준이 높아 금세 빠져들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속내를 드러내는 것은 조금 지난 이후이지만, 1화만 봐도 두 명의 주인공 레그와 리코가 앞으로 어떤 여정을 걷게 될지, 어떤 암울한 운명과 맞닥들이게 될지 분위기를 예상할 수 있는데 (레그는 존재 자체가 미스터리 한 채로 시작되기 때문에 이 정체에 관한 사실이 등장할 때 분명 폭발력을 가질 수 밖에는 없을 거다), 무거운 분위기와 전개 속도 그리고 중간중간 섞여 있는 유머들이 어색하지 않게 잘 녹아있다. 가끔 이런 류의 작품의 경우 뜬금없이 등장하는 특유의 유머가 너무 수준 이하 거나 취향이 맞지 않아 몰입도를 확 깨는 경우가 많은데, ‘메이드 인 어비스’는 적절한 수준이다.

내가 어린아이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선호하지 않는 이유가 이것 때문은 아니지만, 어린 주인공이 참혹할 정도의 고통을 당하는 모습이나 과거사의 묘사는 눈물이 날 정도로 가슴이 쓰렸다. 누군가에겐 불편함이 될 수도 있을 텐데, 내게는 불편함을 넘어서는 인물들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져 더 가슴 아팠다.

 

1기는 13화로 종료가 되었고 2기 제작이 확정되었는데, 1기의 마지막 장면을 보니 마치 ‘반지의 제왕 : 반지원정대’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즉, 이제야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된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1기의 엔딩이었는데, 솔직히 레그와 리코 그리고 나나치의 이야기가 앞으로 얼마나 힘겨울지 기대도 걱정도 든다. 2019년에야 만나볼 수 있다는 소식도 쓰라리고 윽.

* 원작 코믹스는 국내에도 대원을 통해 12월 현재 4권까지 발매되었는데 코믹스도 구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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