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 : 라스트 제다이 (Star Wars: The Last Jedi, 2017)
새로운 시대, 다음 세대를 위한 스타워즈
프리퀄 3부작까지 완료한 뒤 새롭게 선보인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 동시에 커다란 부담감을 가질 수 밖에는 없었던 작품이었다. J.J. 에이브람스의 선택이 영리했던 건 기존 스타워즈 팬들의 기대도 어느 정도 충족시키는 동시에 새로운 세대의 관객들에게도 접근 가능한 스타워즈로서 ‘에피소드 7 : 깨어난 포스’를 포지셔닝했기 때문이었다. 기존 팬들이라면 누구라도 ‘에피소드 4 : 새로운 희망’을 연상시킬 수 있었던 ‘깨어난 포스’의 기본 골격과 전개는 반복적이어서 단점이 될 수 있는 부분들을 커버하기 위해, 이미 6편이나 존재하는 시리즈 영화에서만 가능할 기존 캐릭터/배우 들을 적극 활용하였고, 이는 반복적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팬들에게 감동과 반가움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물론 새로운 세대의 관객들에게도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에피소드이기도 했고.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렇게 새롭게 시작된 스타워즈의 프랜차이즈는 두 번째 작품이자 여덟 번째 에피소드인 ‘스타워즈 : 라스트 제다이’를 선보이게 되었는데, 넓은 의미로 보았을 때 이 작품 역시 기존 ‘에피소드 5 : 제국의 역습’을 밑바탕에 깔고 있지만, ‘깨어난 포스’와는 달리 많은 전개에 있어서 방향성을 달리 하는 것으로 새로움을 추구한다. 마치 반전 영화처럼 그저 기존의 영화 공식, 그리고 스타워즈에서 더 도드라지게 존재했던 방식들을 일부러 비껴 나가는 것 자체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니라, 그럴 만한 이유와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라스트 제다이’가 갖는 의미는 제법 의미심장하다.
일단 가장 주목해 볼 점이자 핵심적인 메시지는 돌아온 루크와 그에게 수련을 받고 제다이가 되기를 원하는(자의반 타의반) 레이의 이야기 안에 있다. ‘스타워즈’의 팬들이라면 아마도 루크가 돌아올 것이라고 알려진 ‘깨어난 포스’의 마지막 장면에서부터 ‘라스트 제다이’라는 영화의 제목까지, 유일한 제다이이자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루크 스카이워커가 카일로 렌을 비롯한 슈프림 리더인 스노크와 대결을 펼치는 등 대활약 (마치 에피소드 3의 요다의 경우처럼)을 펼치는 것을 기대했을 텐데, 루크가 대활약하는 것은 맞지만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고 소멸했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레이와의 대화 중에 루크는 유난히 ‘전설’이라는 말을 강조한다. 자기 자랑이나 허세가 아니라 자기반성과 고뇌의 과정 중에 있다는 걸 가장 잘 드러내는 표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다시 말해 ‘라스트 제다이’에서 루크는 이미 완성된 제다이 마스터가 아니라 그 역시도 오랫동안 갈피를 잃고 더 나아갈 방법을 알지 못해 포스를 닫고 정지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레이와의 조우를 통해 자신의 역할을 고민하던 루크는 결국 영화 속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진정한 제다이 마스터로 거듭나게 된다.
루크의 자기반성과 마지막 선택 그리고 분명한 선과 악의 존재가 아닌 그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두 주인공 레이와 카일로 렌의 이야기는, 기존 ‘스타워즈’의 문법을 벗어나 훨씬 더 넓은 세계로의 확장성을 가져보려 한다. 즉, 기존의 ‘스타워즈’ 이야기는 스카이워커라는 가문을 중심으로 한 가족사라고 보았을 때, ‘스타워즈’의 세계관과 주요 캐릭터 들은 모두 누군가의 핏줄인가가 가장 중요한 궁금증이자 스토리를 전개시키는 핵심적 매개체로 등장했었다. 처음 ‘깨어난 포스’가 등장했을 때 주인공 레이는 물론 다른 캐릭터들 조차도 그런 호기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은 기존의 ‘스타워즈’가 그런 문법 상에 존재했었기 때문이다. 결국 다크 사이드로 넘어간 주인공들의 선한 점을 끌어내기 위해, 아니 끌어낼 수 있다고 믿었던 이유도 근본에는 그가 원래 스카이워커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고, 제다이로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캐릭터가 등장하게 되면 어떤 방식으로든 스카이워커 가문과 연결되었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라스트 제다이’는 과감하게 기존의 ‘스타워즈’ 문법에서 탈피하고자 한다. 이 작품이 공개되기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예상은 레이가 루크의 딸이거나 스카이워커 가문의 핏줄이 섞인 캐릭터일 거라는 점이었는데, 결국 레이는 스카이워커 가문은 물론 어떤 알만한 가문과도 연결되지 않은 평범한 부랑자의 딸이라는 사실을 ‘라스트 제다이’는 힘주어 말한다. 중반 이후까지 레이의 부모가 누군가에 대해 궁금증을 유발하는 걸 보면 역시 레이는 누군가 알만한 이의 딸이 맞는구나 혹은 레이가 쉽게 인정하지 못할 정도로 증오하는 존재구나 라고 오해하도록 만들고, 더불어 마치 카일로 렌과 레이가 남매인 것처럼 예상하도록 분위기를 이끌지만 마지막에는 모두 다 거짓이었다는 것을 영화가 비교적 분명하게 밝히면서, 용감하게 한 발 더 나아가고자 한다.
그런 측면에서 루크가 죽음을 맞게 되는 시퀀스는,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하며 ‘아!’하고 탄식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인상적이고 감동적이었다. 루크는 그 자신이 스카이워커로서 모든 것을 직접 해결하고 전설의 제다이라는 것에 머물 수 있었음에도 자신이 선택해야만 하는 시점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깨달음을 얻고, 칭송받는 전설도 증오의 대상도 되지 않은 채 현명한 방법으로 마지막을 맞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 두 개의 태양을 바라보는 그 시퀀스는, 정확히 타투인의 평범한 소년이었던 루크가 막연한 미래를 꿈꾸며 바라보던 바로 그 태양과 정확히 수미쌍관을 이루는 장면으로, 오랫동안 이어져왔던 스카이워커 가문의 서사를 마무리하는 장대한 엔딩이었다.
그리고, 그다음 등장하는 장면은 ‘라스트 제다이’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더 확실한 답을 준다. 루크 스카이워커가 그렇게 죽음을 맞게 된 이후, 마치 타투인의 소년 루크가 처음 그랬던 것처럼 어떤 평범한 소년이 밤하늘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같은 테마가 흐르는 장면은, 아마 기존 같았으면 ‘이 꼬마가 또 누구의 아들 아니야?’라고 기대(?)했을지 모르지만, 그와는 정반대로 그저 평범한 소년도 제다이, 아니 어둠에 맞서 정의롭게 싸울 수 있는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메시지로 ‘라스트 제다이’가 ‘스타워즈’에 던진 가장 의미 깊은 순간이었다.
1. 캐리 피셔가 등장하는 장면은 모두 다 인상 깊게 느껴질 수 밖에는 없었는데, 오히려 제작진이 레아를 떠나보내지 않기 위해 더 노력한 듯 보여 짠했다. 그리고 영화 말미 루크와 레아가 대화하고 이별하는 장면은 극 중에선 루크와의 이별이지만 현실에선 캐리 피셔와의 이별로 느껴져서 더 울컥했고.
2. 레이는 불안함이 있지만 용기 있고 곧은 성격이 갈수록 더 매력을 끄는 것 같다. 이번 기회에 ‘깨어난 포스’도 다시 보게 되었는데 처음 보았을 때는 몰랐던 매력들도 발견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라스트 제다이’를 통해 더 단단해지고 다음 에피소드가 기대되는 모습들이 인상적이었다.
3. 그에 반해 핀 캐릭터가 점점 모호해진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핀이 맡은 역할과 성격은 분명한데, 그 역할을 일부분 포도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핀의 분량이 많아질수록 조금 중심에서 멀어지는 느낌이 든다. 클래식 3부작으로 비교해 본다면 레이는 루크, 핀은 한이나 레아의 역할이라고 볼 수 있는데, 한의 역할을 핀과 포가 일정 부분씩 나눠 갖고 있는 모양새라 핀의 독립적인 이야기가 많아질 때 좀 더 모호해지는 경향이 생기는 듯하다. 다음 에피소드에서 어떻게 만들어낼지가 궁금.
4. 액션 시퀀스에 있어서는 확실히 더 볼거리와 스케일이 화려해진 느낌이었다. 그래서 좀 더 단순해지고 뻔해진 측면도 있지만, 이미 기존에 펼쳐진 세계관 만으로도 복잡하고 광활한 스타워즈이기 때문에 본편에선 이 정도로 단순하게 넘어가도 상관없다는 생각.
5. 마지막으로 기대했었는데 아이맥스 화면비 전환은 없었다. 집에서 먼 용산까지 가서 불편한 3D 안경으로 감상한 이유도 ‘혹시…’하는 기대 때문이었는데 ‘깨어난 포스’의 황홀한 밀레니엄 팔콘 액션씬과는 달리, 화면을 가득 채우는 아이맥스 시퀀스는 없더라. 재관람하게 되면 돌비 애트모스 2D로 보게 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