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感想)

퀸스 갬빗

퀸스 갬빗 (The Queen’s Gambit, 2020)
지금! 안야 테일러 조이!

포스터나 시놉시스만으로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작품들이 있다. 특히 장르가 특정되거나 특별한 직업군을 그리게 될 때는 이 범주를 더 벗어나기 어렵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퀸스 갬빗 (The Queen’s Gambit, 2020)’은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체스 플레이어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다. 체스 플레이어가 주인공이라고 할 때, 그리고 미국의 50년대부터 70년대 이전까지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일 때, 마지막으로 주인공이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자일 때 예상할 수 있는 전형적인 이야기들이 있다. ‘퀸스 갬빗’은 한 편으론 이런 예상에서 한 발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는 최근 내가 본 드라마들 가운데 가장 빠르게, 그러니까 가장 단숨에 봐버린 몰입도 높은 웰메이드 드라마였다. 도대체 이 전형적인 드라마의 매력은 무엇일까.

안야 테일러 조이가 연기한 주인공 베스 하먼은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고 보육원에서 자라다가 우연히 보육원에서 일하던 이가 체스를 두는 것으로 보고 흥미를 갖게 되고, 체스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 이후 새 가정에 입양되어 본격적으로 체스 플레이어로서 토너먼트에 나서게 되는 베스는 어린 나이와 여성으로서 연속으로 대회를 우승하며 점점 더 주목받게 되고, 끝내 당시 최고의 체스 플레이어들이 존재하던 소련에서 열리는 토너먼트에 미국 대표로 참가하게 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드라마는 몹시 전형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아주 어린 시절부터 천재적인 재능을 보인 주인공. 너무 어린 나이에 남성들의 세계이던 체스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냈기에 여성으로서 겪게 되는 일들, 그리고 천재적인 체스 실력 외에는 부족한 공감능력과 대인관계. 마지막으로 흡사 록스타들이 그런 것처럼 성공가도를 달리며 자연스럽게 겪게 되는 술과 마약 등의 문제까지. 베스 하먼의 이야기에는 이 모든 것이 교과서처럼 담겨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매력적인 이유는 일단 베스 하먼을 연기한 안야 테일러 조이의 매력이다. ‘더 위치 (The witch, 2015)’와 M. 나이트 샤말란의 영화 ’23 아이덴티티 (Split, 2016)’로 얼굴을 알렸던 안야 때문에 이 작품을 보게 된 것이나 마찬가진데, 이런 이유라면 더더욱 이 작품이 마음에 들 정도로 ‘퀸스 갬빗’은 안야 테일러 조이의 매력을 전작들보다 훨씬 더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안야 테일러 조이의 얼굴은 차가움과 불안함 그리고 강렬함이 모두 담겨 있는 얼굴인데, 이 작품의 감독인 스캇 프랭크는 확실히 안야의 활용 방법을 완벽하게 알고 있는 듯하다. 앞으로 안야가 출연한 작품들의 감독들과 카메라 감독들에게 모두 이 작품을 참고하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퀸스 갬빗’은 카메라에 완벽하게 담긴 안야 테일러 조이의 영화다. 이 평범한 이야기를 완벽하게 만드는 것은 안야 테일러 조이라는 배우이고, 안야 테일러 조이에겐 비교적 어린 나이에 자신에게 완벽한 작품을 만났다는 점에서 ‘퀸스 갬빗’은 서로에게 특별해진다.

배우의 매력만큼이나 이 드라마는 모든 면에서 평균 이상이다. 어느 한 부분이 압도적인 수준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전반적으로 퀄리티가 준수하다. 시대극으로서의 매력도 충분하고, 베스 하먼이라는 한 인물의 삶을 그리는 방식으로서도 매력적이다. 물론 특별한 체스 플레이어의 세계를 묘사하는 데에도 적절한 균형 감각을 보여준다. 가끔 룰이 중요한 스포츠를 주제로 할 때 그 게임 자체의 전개에 극도로 집중하는 식의 연출이 많은데, 이 작품 역시 클라이맥스는 가장 큰 경기의 결승전을 그리고 있지만 다른 스포츠 영화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게 체스의 룰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극적인 감동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연출을 보여준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아, 이 작품은 아마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닐까?’라는 예상을 했었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놀랍게도(?) 실화와는 전혀 무관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퀸스 갬빗’은 드라마 내내 마치 이 작품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인 것 같은 분위기를(혹은 뉘앙스를) 전달한다. 단지 연도와 인물의 이름들을 표기하는 것만으로는 이런 느낌을 줄 수 없을 텐데, 실화를 바탕으로 한 휴먼 드라마들이 갖추고 있는 드라마적 장점들을 아주 영리하고 교묘하게 소화해 낸다. 바로 그 점이 ‘퀸스 갬빗’이 시대극으로서도 매력적인 이유다. 당시의 의상과 거리의 풍경 묘사는 자주 등장하는 편이 아님에도 이 드라마를 완벽한 시대극으로 만들어 내는 데에 부족함이 없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퀸스 갬빗’의 여러 요소는 주인공을 제외하면 그다지 돋보이는 것이 없어 보이는데, 모든 면에서 평균 이상이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될 정도로 몹시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미처 언급하지 못했지만 적절한 삽입곡과 스코어 역시 끝나자마자 사운드트랙을 찾아봤을 정도로 좋다. 

안야 테일러 조이의 팬으로서 이 작품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더 오래 기억할 만한 작품이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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