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deliver us from evil, 2020)
구차하지 않은 장르적 변주
홍원찬 감독, 황정민, 이정재 주연의 하드보일드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포스터와 예고편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철저히 장르를 표방한 영화다. 굳이 두 배우가 함께 출연했던 영화 ‘신세계’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영화가 시작하고 나면 (어쩌면 시작하기도 전에)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 영화의 이야기와 구조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이 영화는 익숙한 캐릭터들과 장르적 특성을 가진 작품이다.
막 마지막 미션을 마친 살인청부업자 주인공과 그 마지막 미션으로 인해 그 살인자를 쫓는 또 다른 살인자, 그리고 그들이 제3세계에서 추격을 벌이면서 그 지역의 범죄세력이 얽히게 되는 가운데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주인공의 과거로 인해 떨쳐낼 수 없는 한 아이의 납치가 있다. 그렇게 한 남자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 다시 한번 자신이 떠나려고 했던 세계로 돌아가고, 그를 끝까지 쫓는 무서운 살인자와의 일방향 추격전이 펼쳐진다.
이 진부할 수 있는 장르 영화를 흥미롭게 만드는 건 간결함이다. 구차한 내용이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비슷한 이야기의 장르영화가 가졌던 설명과 전사 등을 모두 배제한다. 인물들이 필요 이상으로 감정에 동요하는 설정도 없고, 무엇보다 관객을 극적으로 자극하는 장면도 거의 없다. 관객을 더 극적으로 자극하는 것이 꼭 나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이런 장르 영화 그러니까 관객이 이미 조금의 피로감을 느낄 정도로 익숙한 이야기의 장르 영화에서는 이런 담백함이 큰 장점이 된다. 이정재가 연기한 레이 역할에게도 필요 이상의 이야기를 주지 않으므로서, 추격전이 훨씬 간결하고 더 큰 힘을 얻게 되었으며 그들 사이에도 추가적인 대사나 갈등을 주지 않아 오히려 마지막에 갔을 때 둘의 관계 아닌 관계가 오히려 여운으로 남게 되는 효과도 있었다.
결투 장면에 있어서도 최근 정형화되다시피 한 액션 구조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는데, 적당히 피로감이 있으면서도 최고 수준의 캐릭터가 펼칠 만한 격투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고, 한 편으론 추격 가운데 좀 더 극적인 요소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을 정도로 구차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연출이었다. 아이가 납치되었다는 설정에서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신파적 요소도 과감히 배제했다.
혹자에게는 야망이 부족한 심심한 영화일지도 모르지만, 비슷한 장르 영화가 넘쳐나고 익숙하다 못해 대부분 진부하게 느껴지는 속에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힘을 빼고, 간결하게 집중한 장르적 변주는 제법 매력적이었다.
* 이 영화가 15세 이상 관람가라는 데에는 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 직접적인 장면들을 일부러 피해 가려고 한 노력이 보이기는 하지만, 칼부림이 난무하고 신체 절단이 난무하는데 15세 이상 관람가라는 건 좀.
* 박정민 배우가 맡은 캐릭터로 인해 조금 다른 결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