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덤 : 시즌 2 (Kingdom season 2, Netflix)
모두가 시즌 3을 고대하게 만들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한국 드라마 ‘킹덤’의 두 번째 시즌을 보았다. 다 보자마자 든 생각은 ‘시즌 1은 어떤 클라이맥스가 있었지?’ 하는 것이었다. 그 정도로 ‘킹덤’ 두 번째 시즌은 (시즌 3을 보기 전인 지금 속단할 수는 없지만), 마치 시즌 1과 2가 하나의 장편 영화라고 보았을 때 중반 부 이후 같은 속도와 리듬, 전개였다. 시즌 1이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가며 어쩌면 말도 안 되는 이 상황을 시청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설득해내는 것에 주력했다면, 시즌 2는 처음부터 끝까지 쉴 틈 없이 치닫는 전개로 6화 전체를 한 호흡으로 내뱉는 모양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물, 특히 이번 ‘킹덤’ 같은 좀비물이 이전에도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닌데 이번처럼 커다란 주목을 받지 못한 이유는 그 괴리감을 좁히지 못한 이유가 컸다. 차라리 사극으로 분한 좀비물이 완전히 현실감각을 무시한 판타지였다면 다른 쾌감을 줄 수 있었을 텐데, 보통 현실적 공감대를 끌어내려 애쓴 (하지만 실패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완성도가 아쉬운 작품들이 많았다.
그런데도 이 같은 설정의 이야기가 많은 창작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또 대중들에게도 매력적 소재인 이유는, 이 허무맹랑할 것만 같은 두 세계의 만남이 의외로 그럴싸하다는 점이다. ‘워킹데드’ 같이 현실의 한 부분으로 완전히 흡수되어 공감대를 얻는 경우도 있지만, 왕정을 배경으로 한 사극의 세계는 여전히 덜 알려진 미지의 공간과 뒷 이야기가 존재하는 세계이기 때문에 그 미지의 빈공간을 다른 것들로 채워나갈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극히 소수에게만 허락된 세계, 그 세계를 둘러싼 또 다른 소수의 갈등과 전쟁, 그 배경에 무엇이 있었는지 누군가 숨기려 했다면 충분히 숨기는 것도 가능했을 시대라는 점에서 그 빈칸을 전혀 다른 세계의 것으로 채우는 것은 정밀하기만 한다면 상당히 매력적이고 또한 현실적인 공감대마저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바로 그런 완성도를 ‘킹덤’에서 보았다. ‘킹덤’을 잘 보면 아주 바쁘게 이야기가 치닫는 와중에도 한편으론 아주 친절하게 이 과정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수고를 빼놓지 않는다. 왜 괴물이 되었고, 왜 괴물이 더 많은 이들에게로 전파되었고, 처음에는 밤에만 활동 가능한 줄 알았던 괴물들이 낮에도 활보할 수 있었고 등등 의녀인 서비(배두나)의 캐릭터를 통해 이 탈출과 도주, 죽음이 반복되는 전개 속에서 일종의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다른 길의 이야기를 동시에 전개한다. 그렇게 차곡차곡 천천히 세계를 설득해 가는 과정은 앞서 말한 매력적인 미지의 빈칸을 채워가며 다른 한 편에서 전개되던 커다란 줄기의 이야기의 더 큰 힘을 싣는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준비되었다 하더라도 시청자가 좀비 사극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가장 큰 조건 중 하나는 결국 퀄리티다. 직접적으로 눈으로 확인하게 되는 영상의 퀄리티. ‘킹덤’이 인상적인 이유는 앞서 말한 내용적 완성도가 근간이 되기는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 이야기를 완벽하게 구현해 낸 퀄리티, 즉 때깔이라고 할 수 있다. 새삼스러운 얘기지만 눈으로, 귀로 전달되는 것들에 투자한 제작비가 얼마나 작품의 퀄리티를 높일 수 있는지 ‘킹덤’을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아니, 그렇지 않은 비슷한 작품들과 비교해 본다면 확연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끝일 줄만 알았다. 시즌 1과 2는 드라마의 포맷을 선택하긴 했지만 하나의 커다란 장편 영화의 구성이었고 그렇게 이야기 역시 완벽히 마무리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킹덤’은 완벽히 끝낼 수 있었던 시점에서 과감하게 한 발 더 내디뎠다. 그 과감한 발걸음이 과욕일지 탁월한 선택일지는 아직 모르지만, 적어도 모두가 시즌 3을 기대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압도적인 엔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