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 : 엔드게임 (Avengers: Endgame, 2019)
MCU 감동의 첫 번째 최종단계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008년 ‘아이언 맨 (Iron Man, 2008)’이 개봉한 지도 벌써 10년이 훌쩍 흘렀다. 그 이후 마블은 단순히 코믹스를 실사화 하는 것을 넘어서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라는 하나의 커다란 세계관을 만들고 마블 코믹스의 캐릭터들을 하나씩 영화화했다. 그리고 일종의 종합 선물 세트이자 정리의 개념을 갖고 있는 ‘어벤져스 (Avengers)’라는 영화를 통해 팬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을 해소해 주는 것은 물론, 자신들이 그려온 큰 그림을 더 견고하고 확장시켜 나가는 데에도 성공했다.
시리즈에서 가장 충격적인 결말이자 많은 이야기를 양산해 냈던 전작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 (Avengers: Infinity War, 2018)’에 바로 이어지는 속편인 ‘어벤져스 : 엔드게임’은 아마도 케빈 파이기와 루소 형제를 비롯한 MCU가 계획하고 꿈꿔왔던 첫 번째 최종 단계일 것이다. 영화에 대한 평가에 앞서 더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10년 넘게 계속된 프로젝트를 이 정도 규모와 이 정도의 완성도로 끝까지 완성해 낸 여러 사람들의 노력이다. 이미 처음 코믹스를 영화화한다고 했을 때부터, 직접적으로는 ‘어벤져스’를 영화화한다고 했을 때부터 수많은 코믹스 팬들과 영화 팬들 사이에서는 말 그대로 ‘말’ 들이 많았다. 기대에 찬 말들부터 우려와 걱정에 이르는 수많은 의견들이 있었는데, 그것들을 모두 극복해 내고 여기까지 온 것 자체가 일단 박수받을 일이다. 그리고 가장 우려되었던 것 중 하나인 히어로 간의 밸런스 문제. 여전히 가끔씩 논쟁의 주제가 되기는 하지만, 사실상 말도 안 되는 힘의 차이가 나는 캐릭터들을 하나의 팀 혹은 상대해야 할 적으로 설정하며 이야기를 이 정도의 완성도로 끌고 왔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인피니티 워’ 이후의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하고 마무리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예상을 할 수 있었는데, 따지고 보자면 개봉한 ‘엔드게임’의 이야기는 그중 다수가 예상할 수 있었던 결과에 가깝다. 시간 여행이라는 설정, 즉 과거로 돌아가 죽은 자들을 살려낸다는 설정은 어쩌면 안이하고 평이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어렵게 이야기를 끌고 온 것에 비해 ‘이제 어떡할 것인가’라는 막다른 질문을 던지고 나서 ‘그냥 그 일이 있기 전으로 돌아가서 되돌리면 되지’라고 말하는 건 허무하기도 하고, 너무 쉬운 결정이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엔드게임’ 역시 이미 앤트맨을 통해 힌트를 줬던 것처럼 양자역학을 통해 시간 여행의 설정을 가져온다. 여기서 다른 시간 여행 영화와 다른 점은 과거의 변화로 인해 미래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인데, ‘엔드게임’도 이 부분을 가장 크게 의식한 것인지 극 중에서 여러 번 이 과정에 대한 설명과 비교를 언급한다.
솔직히 과거로 돌아간다는 설정이 나왔을 때 ‘이건 절대 불가능해’라고 생각했던 것이, 모두가 현재를 포기하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것과는 달리 토니 스타크는 (피터를 잃기는 했지만) 현재의 삶이 몹시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페퍼와 결혼한 것은 물론, 딸이 생겼다는 점에서 결코 돌아갈 수 없다(없을 것이다)라는 생각 때문에 과연 영화가 이 설정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심하게 걱정이 되었는데 (딸을 낳고 나서부터는 이런 설정이 등장할 때 심하게 공감되곤 한다), 다행히(?) 다른 시간 여행의 방식을 보여주며 영리하게 피해 간 측면이 있다 (여기서 크게 한시름 놓았다).
이렇듯 어쩌면 (결과적으로) 뻔한 과거로의 시간 여행 그리고 다소 벅찬 감이 있는 캐릭터들 간의 분량 분배 문제가 있었음에도, 그 아쉬운 점들을 모두 상쇄시키고도 남을 만큼 감동적이었던 건 바로 글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2008년 ‘아이언맨’부터 시작된 MCU만의 유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로 돌아간 장면들이 단순히 영화 속에서만 시간을 과거로 돌린 것이 아니라 스크린 밖 현실의 시간에서도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아마 보통의 영화는 갖기 힘든 오랜 시간을 살아남고 점점 높아지는 기대치에 부응해 온 프랜차이즈 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일 것이다 (조금 비슷한 경험으로는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이 있었다).
그렇게 자신들이 차곡차곡 쌓아온 유산들을 시리즈의 최종장에 적절한 설정으로 풀어놓으며 관객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것에 머물지 않고, 이 시간을 함께 해 온 관객들을 타자가 아닌 영화와 동일한 일원으로 만들어 버리는 기술은 이 프랜차이가 팬들과 함께 성장해왔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엔드게임’을 보며 팬들이 눈물을 흘렸던건 단순히 어떤 캐릭터가 퇴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캐릭터와 함께 한 시간들이 자신도 미처 몰랐을 만큼 소중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MCU의 세계관에서 현재까지 중심에 있었던 건 누가 뭐래도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라고 말할 수 있을 텐데, 이 최종장을 통해 이 두 명의 캐릭터와 이별하게 된 것은 어쩌면 예정된 이별이었을 것이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첫 번째 최종 단계.
땡큐 어벤져스.
* 그래도 헛헛한 여운은 멈추질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