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感想)

위대한 쇼맨 _ P.T바넘에 대해 알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위대한 쇼맨 (The Greatest Showman, 2017)
P.T바넘에 대해 알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데미언 셔젤의 ‘라라 랜드’ 이후 향후 몇 년간 국내 개봉할 모든 뮤지컬 영화의 운명은 ‘라라 랜드 제작진이 만든…’처럼 어떻게든 ‘라라 랜드’와 엮이게 될 슬픈 운명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 첫 번째 영화가 바로 휴 잭맨 주연의 영화 ‘위대한 쇼맨 (The Greatest Showman, 2017)’이다. ‘라라 랜드 작사팀이 참여한..’이라는 홍보 문구를 전면에 내세우며 다시 한번 뮤지컬 영화의 대박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위대한 쇼맨’은 일단 ‘라라 랜드’와는 전혀 결이 다른 영화다. ‘라라 랜드’가 할리우드의 고전 뮤지컬 영화들의 방식을 가져온 영화라면, ‘위대한 쇼맨’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즉 무대 뮤지컬 공연의 요소가 더 짙게 깔린 영화다 (이 둘은 비슷한 듯 하지만 화법은 전혀 다르다). 그리고 무엇보다 ‘위대한 쇼맨’은 실존 인물로 마케팅의 귀재로 더 잘 알려진 P.T 바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완전한 허구의 영화와는 전혀 다른 지점에 놓이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국 그 문제 때문에 ‘위대한 쇼맨’은 비판적일 수 밖에는 없는 영화가 되어 버렸다.

먼저 영화적으로 보았을 때 ‘위대한 쇼맨’은 무대 뮤지컬의 박력과 감동을 스크린으로 옮겨 오는 데 성공한 매력적인 포인트들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음악 장르적으로 보았을 때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음악 대신 팝과 힙합적인 요소까지 적극적으로 더해진 음악들로 채워져 있어서 훨씬 더 현재에 감상하기에 역동적이고 신선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특히 바넘의 서커스 단원들이 단체로 펼치는 곡들은 모두 다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을 텐데, 한 곡이 끝날 때마다 마치 뮤지컬 공연을 관람할 때처럼 극장에서 박수를 쳐야 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오히려 나오는 박수를 억지로 막아야 했을 정도로)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야기의 전개는 여러 곳에서 허술하고 필요 이상으로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앞선 뮤지컬 영화로서의 장점이 이를 어느 정도 상쇄시키는 역할을 한다. 더불어 휴 잭맨을 비롯해 레베카 퍼거슨, 젠다야 콜맨, 미셸 윌리엄스 등의 연기와 노래는 (특히 젠다야) 단숨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레베카 퍼거슨은 역할의 특성상 립싱크를 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알게 된 사실들은 이 영화를 곱게만 바라볼 수 없게 만들었다. 바로 휴 잭맨이 연기한 주인공 테일러 바넘의 실존 인물 P.T 바넘의 이야기들 때문이었는데, 영화 속에서도 어느 정도 그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아주 조금 느껴지기는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를 가난에서 성공으로, 잘못에서 뉘우침으로 극복하는, 결국엔 좋은 사람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실제 P.T바넘의 삶과의 괴리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난 사실 영화 속에 묘사된 모습만으로도 바넘이 정말 좋은 사람인가 의심이 들었던 터라 (성공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결국 약자들을 광대로 만들어 이용하고자 했던 의도 때문에) 실제 그의 삶을 조금 알게 된 뒤에도 그다지 충격이 크지는 않았는데,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이 영화가 묘사하는 바넘이라는 인물은 몹시 긍정적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에서 실제 바넘을 미화한다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려울 듯하다.

말도 안 되는 거짓말들을 ‘결국 대중들은 속기를 원한다’는 마케팅 적인 장점(?)으로 둔갑시킨 것까지는 각자가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니 넘어갈 수도 있지만, 그가 자신의 쇼의 광대로 등장시킨 인물들(동물들까지)에게 했던 행동들은 다분히 인권을 유린하고 그들을 더욱더 인간으로서 대접받기보다는 그저 특별한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게 각인시켜 버리는 의도적 쇼였다는 점에서 비판적일 수 밖에는 없다. 사실 영화 속에 그려진 바넘의 모습도 냉정하게 본다면 애초에 그들을 모은 이유가 그들의 삶을 양지로 이끌어 내기 위한 좋은 의도가 아니라, 그저 돈이 될 것 같다는 촉으로 인한 것이었고, 더 나아가 마지막에 모든 것을 잃고 다시 그들과 함께 하게 되는 과정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넘은 달라진 게 없지만 그의 동료들이 바넘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재기하게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오히려 바넘이 능동적으로 착한 인물로 그려질 때 보다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결국 그의 그런 행동은 방식에 있어서 논란이 될 수도 있지만, 정작 인권 유린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그들 스스로가 원했고 또 바넘에게 우리를 양지로 이끌어 내주고 서로를 만나게 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있다 라는 식의 묘사는 그가 행했던 잘못된 행동들의 면죄부를 넘어서 당위성마저 얻게 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위대한 쇼맨’은 뮤지컬 영화로서의 장점을 고루 갖추고 있는 매력적인 영화이지만, 그 영화가 담고자 했던 실존 인물 P.T 바넘에 대해서는 영화가 묘사하는 방식 외에 다른 방향의 이야기도 듣고 확인해볼 필요가 있는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적어도 나에겐 극장을 나올 때까진 기쁘고 흥분된 영화였지만, 조금 뒤 알게 된 바넘의 삶으로 인해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된 영화였다. 아, 그리고 그런 측면이 아니더라도 과연 그가 성공한 광고, 홍보의 방식이 옳은 방향이었는가 하는 것에서도 여전히 부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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